나의 미국 첫날밤
댈러스 공항의 마지막 출구 게이트가 열리자, 특유의 후덥지근하고 눅진한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숨이 막히는 듯한 공기 속에서 ‘이제 정말 낯선 땅에 도착했구나’ 실감할 틈도 없이, 아랫배에서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비행기 안에서만 화장실을 다섯 번은 들락거렸다. 속이 여전히 뒤틀려 있었고 그 홍삼 농축액의 여파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이쯤이면 몸속에 남은 게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또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는 나 자신이 솔직히 좀 무서웠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공항 안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붐볐고, 오랜만에 만난 이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고 웃으며 자유롭게 반가움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를 뚫고 화장실 표지판을 따라 급히 걸음을 옮겼다. 낯선 공항의 소음 속에서, 세면대 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제는 배출 소리가 들릴까 신경 쓰는 일조차 부끄럽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게, 체념처럼 느껴졌다.
옆 칸에 누가 있든, 밖에서 누가 들어오든, 이제는 상관없었다.
‘뭐… 이참에 살이라도 좀 빠졌으면 좋겠네.’
나는 물을 틀어 손을 씻으며 중얼거렸다.
화장실에서 나와 출구 게이트 쪽으로 걸어 갈수록 사방에 걸린 영어 간판들은 꼭 영화 세트장처럼 보였다.
"미국이다, 진짜…"
동시에, 이 넓은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문득 가족이 보고 싶어졌다. 사람들의 웃음과 캐리어 끄는 소리가 뒤섞이는 이 공간에서, 낯선 공기와 고독이 묘하게 한데 섞여 있었다.
국제선에서 국내선 게이트로 향하는 절차는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간단했다. 이제는 조금 익숙한 듯 X-ray를 통과하고 흩어진 짐을 주워 담자, 눈앞에 면세점 구역이 활짝 열렸다. 명품 로고가 빛나고, 음식 냄새와 술잔의 불빛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도 없었고, 이 면세점 구역에서 14시간만 잘 버티면 별일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그렇게 마음이 놓이자, 허기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기내식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못 잤으니 당연했다.
나는 수많은 간판과 반짝이는 매대를 스쳐 지나며, 본능적으로 가장 맛있는 냄새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멕시코 타코집, 중국 음식점, 일본 라멘 가게, 그리고 커다란 햄버거 간판까지 줄지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향신료와 기름 냄새가 뒤섞여, 머리가 조금 어질 할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유학생들에게 인기 많다는 치폴레(Chipotle)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치폴레 가게 앞에 서자, 고수와 구운 고기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메뉴판에는 낯선 단어들이 빼곡했고, 직원들은 거대한 숟가락으로 쌀과 고기를 척척 담고 있었다. 손님들이 받아 든 음식은 마치 멕시코식 비빔밥 같았다. 익숙한데도 낯선 조합이었다. 줄에 선 사람들은 랩을 하듯, 숨 쉴 틈도 없이 주문을 쏟아냈다.
“Bowl with brown rice, chicken, no beans, extra guac, light sour cream, mild salsa thanks!”
(현미에 치킨, 콩 빼고, 과카몰레 듬뿍, 사워크림 조금, 순한 살사로요. 감사합니다!)
그걸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와… 저걸 다 말해야 한다고?’
직원이 내 차례를 향해 고개를 들었지만, 나는 그냥 미소만 지었다.
“Next?”(다음 손님?)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나는 조용히 뒷걸음질 쳤다.
손에 쥔 가방이 다리에 부딪히며 덜컹거렸다.
괜히 창피한 마음에 고개를 숙인 채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비교적 적은 햄버거 가게 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흑인 남자 직원이 있었다.
그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말했다.
“Hey there! What can I get for you, my friend?”
(이봐요! 뭐 드릴까요, 친구?)
그 순간, 낯선 나라에서 처음 듣는 “my friend”라는 말과 그 표정에서 미국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국이었다면 아마 “다음 손님 주문하세요.” 하며 정중하고 매너 있게 말했을 것이다. 그 짧은 한마디가, 내가 정말 미국에 와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나도 직원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Uh… one cheeseburger and coke. Large size, please.”
(음… 치즈버거 하나랑 콜라요. 큰 사이즈로 부탁드립니다.)
직원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따라 부르며 패티를 굽기 시작했다.
“Let’s get it started~ yeah~” (자, 시작해 볼까~ )
기름이 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그는 리듬에 맞춰 집게를 돌리더니, 내 쪽을 보며 웃었다.
“So, where you from, my friend?”
(그래서, 어디서 왔어요, 친구?)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South Korea.”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Ah! Korea! You guys make good BBQ, man! I love bulgogi!”
(한국! 불고기 진짜 좋아해요!)
그 말에 나도 웃으며 어색하게 “Haha, yeah…” 하고 맞장구를 쳤다. 왠지 모르게 이 자유로운 분위기에 끌리면서도, 한국이었다면 결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벼운 말투가 살짝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앞으로 미국에서 잘 적응하려면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색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흥얼거리는 노래의 리듬에 살짝 몸을 맞췄다.
잠시 후, 햄버거가 완성됐다.
패티 위로 치즈가 녹아내리고, 토마토와 양상추가 정갈하게 쌓였다. 그 옆에는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커다란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Large size라고는 했지만, 이건 한 손으로 들고 다닐 크기가 아니었다. 콜라만 다 마셔도 한 끼 식사가 될 만한 양이었다. 그걸 두 손으로 들어 올리자, 묵직한 무게감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매대 한쪽에는 케첩이 작은 통이 아니라 펌프식 대형 디스펜서로 놓여 있었다. 소주잔만 한 종이컵에 케첩을 짜 넣자, 붉은 소스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와… 진짜 뭐든 사이즈가 다르네.”
혼잣말을 하며 웃고 있는데,
그때 직원이 음악 리듬에 몸을 맡긴 채 내 쪽을 보며 말했다.
“Refill’s free, by the way.”
(리필은 무료예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이걸 다 마시고 또 리필을 한다고?’
컵만 해도 얼굴만 한데, 그걸 다시 채워준다는 사실이 웃기기도 하고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이 정도면 물가가 비싼 게 아니라, 그냥 양이 많아서 비싼 거 아닐까.’
계산대 앞엔 손바닥만 한 터치스크린이 반짝였다.
‘Subtotal $20.85’ 아래로 15%, 20%, 25% 버튼이 줄지어 있었다.
직원은 팔짱을 낀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Take your time, my friend.” (천천히 하세요, 친구.)
그 말이 이상하게 부담스러웠다.
15%를 누르려던 손끝이, 괜히 눈치가 보여 20% 위로 미끄러졌다.
“삐익.” 단말기 소리와 함께 금액이 $24.96으로 뛰었다.
‘햄버거 하나에 25달러라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그 뒤엔 씁쓸함이 남았다.
‘이 자유로움이라는 게… 정말 순수한 친절일까?’
‘아니면 팁을 받기 위한, 계산된 여유일까?’
직원의 환한 미소와 “my friend”라는 말이 갑자기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진 따뜻하게 느껴졌던 그 말투가 이제는 어딘가 연극처럼 느껴졌다.
그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패티를 뒤집던 모습도, 이제는 팁을 기다리는 공연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그래도 뭐, 이게 자본주의 미국 문화라면 내가 적응해야지..’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억지로 웃었다.
햄버거 포장을 열자, 고기와 치즈, 그리고 구운 빵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첫 입을 베어 물자 짠맛과 기름, 치즈의 고소함이 동시에 터졌다. 너무 세고, 너무 짜고, 그런데 이상하게 한입 더 먹고 싶어지는 맛이었다.
‘이게 미국의 맛이구나.’
콜라를 한 모금 마시자 탄산이 목을 시원하게 타고 내려갔다. 입안의 기름기가 씻겨 내려가면서, 몸속까지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낯설지만 이상하게 편안했다.
배를 채우자 긴장감이 풀리고, 미친 듯한 졸음이 밀려왔다.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 헤매다 보니, 한참 남은 게이트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예상대로 조용했다.
누군가는 캐리어를 베개 삼아 코를 골고, 누군가는 슬리퍼 신은 발을 까딱거리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 자유롭고 무심한 풍경이 부럽기도, 낯설기도 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가방을 품에 꼭 안은 채 눈을 감았다.
얼마나 잤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목이 뻐근해 눈을 떴을 때, 공항은 이미 깊은 밤이었다.
가게들의 불은 거의 꺼져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아예 의자 두 개를 붙여 침대처럼 누워 있었다. 다른 이들은 캐리어를 베개 삼아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편안해 보여, 나도 그대로 따라 해 보기로 했다.
구석으로 걸어가 가방을 베개 삼아 바닥에 몸을 붙이자 특유의 공항 카펫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세제를 뿌린 듯한 인공적인 향 뒤로 오래된 먼지와 수천 명의 발자국 냄새가 섞여 있었다.
어디선가 새어 나오는 찬바람과 먼지가 뒤섞이며 묘한 공기를 만들었다.
피로가 모든 감각을 무디게 했다. 눈을 감자마자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갑자기 내 가방 속에서 폭발하듯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워우와아아아아아아아——!!”
가수 하현우 씨가 무대 위에서 혼신을 다해 부르는 특유의 목을 긁는 초고음, 그 한계까지 치솟는 절규가 공항을 찢어놨다. 그건 한국에서 매일 아침 나를 깨워 주던, 익숙한 알람이었다.
순식간에 공항이 정적에 잠겼다.
바닥에 드러누워 자던 사람들도,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던 사람들도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가방을 뒤적였다.
“Sorry, Sorry!” (미안합니다, 죄송해요!)
하지만 그 초고음은 끝까지 버티며 마지막까지 절규했다.
“워우아아아아아아——!!”
나는 부랴부랴 알람을 끄며 두 손을 모았다.
“Sorry… my wake up call.” (죄송해요… 제 기상 알람이에요.)
옆자리 백인 할아버지가 하품을 하다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Man, that’s a powerful alarm!” (이야, 알람 소리 참 강력하네!)
나는 민망하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표시를 했고, 다시 잠을 청하려 누웠다.
조금 전의 당황스러움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그 공항 바닥은 편안했다.
몸이 바닥에 착 붙는 느낌이, 마치 오래된 카펫이 나를 감싸주는 듯했다.
잠결에 깨어보니, 나는 공항 카펫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내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내 입 아래 고여 있는 투명한 침 웅덩이였다.
마치 “여기가 내 자리야” 하고 표시라도 해둔 것처럼.
몸을 뒤집어 천장을 바라봤다.
누군가의 이물질과 머리카락 한 올이 입에 붙어 있었다.
어디선가 청소기 소리가 웅웅 울렸고, 멀리서 커피 향이 은근히 섞여 들어왔다.
그렇게 천장을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곧 깊은 잠에 빠졌고, 다시 엎드려 잤다.
아마 그날 밤, 나는 댈러스 공항의 카펫 위에 쌓인 전 세계의 먼지와 이물질을, 코와 입으로 부지런히 빨아들이며 잤을 것이다.
낯설고도 이상하게 따뜻한 그 공항 바닥이, 내 첫 미국의 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