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여사 Oct 27. 2023

적당한 거리감

<맑은 가을 하늘의 햇살을 느끼며>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았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자 각자의 방을 만들어주고는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면 사춘기 소년, 소녀의 바운더리를 지켜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언제나 내 눈 앞에서 꼬물거리며 엄마를 찾던 아이들이 이제 청소년이 되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항상 친구들의 이름과 함께 하루의 일과를 종알대던 아이들은 이제 없다. "오늘은 윤지랑 놀았어요.",  "오늘은 범준이랑 축구했어요." 라고 말해주어 알게된 친구들의 이름들을 이제는 들을 수 없다. 친구랑 놀다오겠다는 전화에 누구랑 놀꺼냐는 질문을 하자면 "엄마가 모르는 친구에요." 라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다. 혹시 아이들에게 연락이 되지 않을 때 연락할 수 있는 친구 한명은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아이를 설득했지만 돌아오는 건 "엄마가 알아서 뭐하게요?"하는 아이의 퉁명스러운 대답이 전부다.  


언제 불안하지 않았던 세상이 있었겠냐만, 요즘같이 불안한 세상에 아이들이 밖에서 무엇을 하면서 지내는지 엄마는 궁금하다. 혹시나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사고를 당하는 게 아닐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험한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엄마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나도 그 나이 때 엄마 아빠에게 시시콜콜 이야기 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이들이 커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나도 안다. 아이들의 바운더리를 지켜주겠다고 한 스스로의 다짐도 잊고 안절부절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 어이없고 우습기까지 하다. 가끔은 아이들에게 나를 깊이 투영하여 내 눈에 비친 아이들로만 바라보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저 사람도 저 사람 나름의 생각이 있겠지라고 상대방을 타자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편인데 내 아이들에게는 그게 그렇게 어렵다. 


적당한 거리에서 아이들을 나와 다른 한명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여기고 이 거리감을 인정해보자. 이런 거리감이 아이들을 덜 사랑하는게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성숙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기다려보자며 다짐하는 하루다. 



작가의 이전글 평범하기 그지 없음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