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쓰기>
몇 년 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해 보겠다며 옷도, 가방도, 신발도 많이도 처분했습니다.
물건을 사면서 기쁨을 느끼는 소비지향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꼬박꼬박 매달 많은 것들을 사들였습니다. 그러다 옷장에서 옷을 꺼내려면 옷무더기가 떨어지고, 빡빡하게 걸려있는 옷들이 부담스러워지는 것을 기점으로 옷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라면상자보다 훨씬 더 큰 박스를 구해 내 옷만 한 박스를 채웠는데도 옷장은 비운 티가 나지 않아 너무 이상했습니다. 두 박스를 비웠는데도 그저 옷들이 숨도 못 쉴 것처럼 꽂혀있다가 조금 숨 쉴 만큼 걸려있는 정도로, 그저 정리한 내 눈에만 보이는 차이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찍어보면 변화가 좀 보일까 싶어 비포와 애프터의 사진을 찍어보았지만, 사진을 봐서는 뭐가 달라진 건지 나조차 알아채기 힘들었습니다.
대대적인 옷장정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보이지 않는 옷장정리에 실망한 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집안살림의 가짓수를 조금씩 줄여보기로 했습니다. 식구들이 아무도 없었던 어느 날 한 시간 반 동안 화장대, 화장실, 부엌서랍, 베란다 선반을 정리했는데 남편.. 아니 가족들 그 누구도 집안을 정리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죠.
화장대와 화장실에서 오래된 화장품, 화장 소품들을 정리해 버리고 쟁여놓았던 샘플류도 종류별로 정리했습니다. 종류별로 정리해 보니 샘플로만 서랍 2칸이 채워질 정도로 뭔가를 쟁여놓고 있었네요. 멀쩡한 화장품을 버리기 아까워 부지런히 써서 소비하기로 했습니다. 화장대에서 나온 오래된 향수는 디퓨저를 만들어 화장실과 화장대에 비치해 두었죠. 그러나 가족들 누구도 디퓨저가 생겼는지 아무도 모르네요. 역시 우리 집 소비요정은 저뿐인가 봅니다.
아직도 집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박스, 많이 정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숨겨둔 바느질재료들, 안 쓰는 가방들, 오래된 그릇들이 잔뜩입니다. 곤도 마리에처럼 설레는 물건인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물건을 정리하자니 남아있는 것들이 모두 친구들과의 추억,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추억, 가방을 샀을 때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설레는 물건들이라고 판단되어 정리가 힘듭니다. 추억이 가득 담긴 물건, 사진, 선물들을 보면 당시의 그리움과 사랑스러움이 떠올라 좀처럼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을 계속 보관한다고 해도 결국은 누군가가 처분해야 하겠죠. 나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 내가 정리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누군가가 마음을 담아 정리해 줄 수 있을까요?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이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고 해도, 내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는 물건일 뿐이죠. 나에게 의미 있는 물건을 소중히 하고 남기고자 하는 것도 집착이겠죠. 아직은 모든 것을 만족스럽게 정리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련 없이 집착을 떨쳐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부작사부작, 천천히 조금씩,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