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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여사 Apr 11. 2022

나는 일상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었나?

우당탕탕 워킹맘의 은퇴 준비 로그


2018년 우울증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이 마음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해 말, 뭐라도 계획을 세워보면 살아갈 힘이 나지 않을까 싶었지만 거창한 계획을 세울 여력이 없었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소소하고 작게나마 그 목표를 달성하다보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2019년 초 한달에 책 3권 읽기, 미니멀하게 살아보기, 저금하기라는 세가지 소소한 계획을 세웠다. 

 

당시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동네 책모임에 가입하게 된 계기로 한달에 책 3권을 돌려 읽는 책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달에 책 3권은 무조건 읽을 수 있겠다 싶어 어떻게든 달성할 수 있는 쉬운 계획을 세워본 것. 한달한달 내가 몇 권의 책을 읽었나 정리해보며 작은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의 마지막 달, 12월 말에 정리해보니 일년에 36권을 읽으려던 연초 계획보다 많은 60여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매달 마감하고 결산하면서 프로젝트의 진행상황과 잘한 부분, 못한 부분이 정리가 되는데, 내 삶에 대해서는 마감과 결산이 없었기에 내가 뭘 하며 살고 있는지 모른 채 그렇게 하루하루가 무료하고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우울해한 게 아닌가 싶다. 당시에는 잡다한 종류이 책을 닥치는데로 읽었기 때문에 인생에 도움이 안되는 책을 나는 왜이렇게 열심히 읽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이 그렇게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이 작은 것으로 이렇게 기쁘다는 감정을 크게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우울증이 오기 전 내 취미는 쇼핑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당시 남편과 정한 내 용돈 20만원의 예산 안에서 매달 옷이며 가방이며 이것저것을 사댔다. 어차피 20만원은 쓸 돈이니 마음의 가책 없이 마음껏(?) 쇼핑을 하곤 했다. 시발비용이라며 회사에서 일하기 싫은 날, 남편이랑 싸운 날, 이유없이 기분이 나쁜 날… 쇼핑 할 핑계는 무궁무진했다. 당연히 20만원이 넘는 물건을 사고싶을 때도 많아 다음달 용돈을 땡겨쓴다고 생각하고 더 큰 돈을 쓴 달도 많다. 돈이 생길 일정이 있으면 돈 쓸 쇼핑 계획부터 세우고 그 계획대로 돈을 썼으며 들어오는 돈보다 더 썼으면 더 썼지 덜 쓰지 않았다.

 

우울증이 내 마음을 두드리고 있을 때, 더 미친듯이 돈을 썼다. 정말 심각하게 우울하기 바로 전단계가 미친듯이 나를 꾸미는 거였는데 그때 정말 갖은 이유를 붙여 옷과 악세사리를 사들였었다. 남편과 정한 나의 용돈은 모두 쇼핑으로 소비했고 용돈에 더해 비상금으로 눈에 보이는 갖고 싶은 것을 구입했다. 그 때는 주저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주저하지 않고 물건을 사들였다. 

 

그러다 우울증이 내 마음에 자리잡았을 때,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렇게 좋아하던 옷이며 가방이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쇼핑은 커녕 먹는 것도 귀찮아졌다. 열심히 모아두었던 옷이며 가방이며 액세서리들이 하나도 예쁘지 않았다. 장롱 문을 열때마다 가득가득한 옷들이 꼴보기 싫다고 생각하던 무렵, 미니멀 라이프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 무거운 마음이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면 조금 가벼워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미련없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정리를 하다보니 대학교 때 엄마가 사준 옷, 20살 무렵 당시 남친이었던 남편이랑 데이트 할 때 입었던 옷,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입던 임부복…. 세상에 고등학교때 친구랑 같이 쇼핑가서 샀던 옹골진(이 브랜드가 아직도 있나? 당시 모델이 조인성이었는데 ㅎㅎ) 이 아직도 있었다. 유행이 돌고 돌아 다시 유행하는 스타일의 청바지였으나, 예전에도 키도 작은데 접어입으니 더 작아보여 입으면 웃겼다는 기억이 났다. 결혼 후 난생 처음으로 내 옷장 문을 열어본 기분이 들었다. 

 

하나가득 장롱을 채우고 있던, 있는지도 몰랐던 것들을 미련없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됐거나 마냥 유행이 지난 건 버리고 별로 입지 않았거나 아까운 것들은 기부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2년 이상 입지 않은 옷을 기준으로 박스에 넣기 시작했다. 입지는 않았지만 버리지도 못하던 것들을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기부라고 생각하니 조금 쉽게 정리가 되었다. 그런데 박스 하나가득 내 옷을 비워냈는데 옷을 하나도 안꺼낸거마냥 옷장은 가득했다. 빈 박스가 하나 더 있었으면 하나 더 채워질 기세였다. 그저 옷들이 숨을 못 쉴 것 처럼 꽂혀 있다가 조금 숨 쉴만큼 널널해진 정도의 차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열심히 모아댔던 옷이며 장신구, 가방들을 주변사람들에게 어울릴 만한 것들은 나눠주고 나머지는 옷캔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열심히 미니멀을 실천했다. 미니멀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다보니 저금하기는 자연적으로 목표금액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깨달았다. 나는 내가 버는 돈이 어디에서 어떻게 나가고 얼마나 저금할 수 있으며 얼마를 저금했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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