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의 ‘한 남자’를 읽다.

by Re나

내가 아닌 나로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 무엇을 선택하는냐에 따라 다른 삶을 살 수 있겠지만, 그 삶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스스로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히라노 게이치로와 만나는 세 번째 책, <한 남자>. 눈이 따가울 정도로 피곤하고 약간의 두통으로 힘들었지만, 쉽사리 내려놓을 수 없었던 책이다. 익숙한 듯한 서사의 구조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성의 방향이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죽은 남편이 다른 이의 신분으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가 그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누군가를 고용한다는 서사의 구조적인 면에서 변영주 감독님의 영화 <화차>를 떠올리게 했지만, 히라노 게이치로는 타인의 신분으로 사는 누군가의 삶을 쫓는 행위 자체를 탐닉하기보다는 한 인간의 삶과 심연을 더듬고 탐구하는 진지한 서사에 더 관심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자율성과 선택과는 무관한 주어지는 삶과 관계라는 환경적인 측면의 사회성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는 ‘나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이번 책에서도 빼놓지 않았고, 흥미롭게 책을 즐기면서도 살아있는 것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지만 지난 과거와 앞으로 올 미래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바라보게 만든다.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를 안고 사는 대신에 타인과 이름과 삶을 바꿔 사는 사람, 타인의 신분으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의 삶으로 영원히 살게 된 사람, 그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존재를 쫓아가며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한 사람.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가의 필력에 다시 한번 감탄한 작품이다. 주인공의 뒤를 쫓아가는 한 남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잘 따라가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의 공간이 많아 오히려 책과 더 밀착되는 느낌이 들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영화 <트루 시크릿>이 떠올랐다. catfish를 소재로 외롭고 쓸쓸한 중년여성의 심리를 다루었던 영화였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지만 남편의 외도로 그녀의 삶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젊음에 대한 욕망을 주요 감정으로 다루지만, 실제로 그녀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버림받는 것이었다. 그녀는 ‘죽는 것은 괜찮지만 버림받은 것은 싫어’라고 이야기했다. 그녀가 sns상에서 만들어낸 젊은 자신은 버림받는 것에 대한 숨은 두려움을 잘 드러내주었다. 나의 존재는 내가 증명해야 하는 것인지, 타인의 의해 규정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으로 생각의 고리가 이어졌다. 책을 읽으며 떠올린 영화와 책장을 덮으며 떠올린 영화는 전혀 다른 두 작품이었다. ‘삶에서 나에게 고통을 주는 문제가 무엇인지 회피하지 말고 똑바로 직면하여, 그 이면의 숨은 감정을 발견하고 마주하는 것은 진정한 나로의 삶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사랑했던 남편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 과연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는 걸까요. 처음 만나서 현재의 그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그다음에는 과거까지 포함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죠. 근데 그 과거가 생판 타인의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알게 된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 사랑하는 거 다닐까요? 한 번 사랑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몇 번이고 다시 사랑하잖아요. 여러 가지 일을 함께 겪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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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