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이동진 님의 책 소개 영상을 우연히 보고 이 책을 선택했다. 작가의 삶에 대한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스토리도 마음에 와닿았지만,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 더 끌렸던 것 같다. 책을 받고 나니까 표지 디자인도 컬러감도 맘에 들어서 더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도 책이랑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매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책 제목뿐만 아니라 13개의 꼭지 제목도 범상치가 않다.
이 책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뉴요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사랑했던 친형이 암투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인생의 비극을 겪고 난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무기력함에 빠진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은 내려놓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두 번째 인생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시작한다.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사랑하는 가족과의 갑작스러운 이별로 인한 비극, 그 마음과 심정이 어떠했을지, 나는 온몸으로 느끼며 이해할 수 있었고, 이 책에 끈적끈적한 애정이 생겼던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였다. “나의 결혼식이 열렸어야 했던 날, 형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그해 가을 나는 다니던 <뉴요커>를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지원했다. 그렇게 한 동안 고요하게 서 있고 싶었다.” 미술관 경비원이라는 일은 하면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온 그는 책의 말미에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던 빈센트 반고흐의 슬픈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이 그 보다 운이 좋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감사함을 느낀다. 그는 고요히 서 있는 경비원이라는 직업을 통해 삶을 음미하고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해 나간다. 바깥세상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더 강하고 용감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도보 여행 가이드라는 직업으로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선다.
이동진 님께서 이 책 한줄평으로 “아름답고 슬프기도 하며, 희망이 차오르는 수필집”이라고 하셨는데, ’ 희망이 차오르‘는 이 말이 이 책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한 줄 한 줄, 읽다 보면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미술관 경비원으로 10년의 시간을 보낸 후 쓴 글이라 작가의 치유와 위로의 시간과 함께한 다양한 작품들이 내게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마치 내가 메트의 회랑을 자유롭고 한가로이 걸닐 때,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따뜻하게 말 걸어 주는 것 같았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 미처 닿지 못했던 시선으로 미술관을 바라보고 다양한 작품과 이야기를 곁에서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의 삶을 관조하면서 나는 이 책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 수 있었다.
이 책은 삶과 고통 그리고 예술을 머무려 놓은 이야기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들을 반복하다 보면 초심과 다르게 호기심이나 생기를 잃어버리는 순간들이 오게 되고, 그게 만성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고 그저 따분하게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술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예술의 다양한 장르와 면모를 볼 수 있는 넘치는 시간을 가진 미술관 경비원인 그는 자신의 삶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일과 예술에 의지하며 고요함과 침묵 속에서 삶의 의미를 하나씩 발견해 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 울컥하기도 하고 마음이 무거워서 더 읽지 못하고 책을 덮으며, 천천히 읽어갔지만, 어느새 나는 작가의 시선에 따라 메트의 작품을 기분 좋게 감상하고 있었다.
미술관을 좋아하는 관객으로만 바라보았던 미술관이라는 공간, 나와 마주한 한 작품, 시각적이고 단면적인 공간으로 느껴졌던 미술관이 굉장히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누구보다 작품과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아주 자주 많이 감상할 수 있는 사람, 작품이 가지는 물성 혹은 시각적 정보뿐만 아니라 작품의 이면의 이야기 담은 것은 예술이 아닌 삶 그 자체였다. 영구적으로 한 공간에 멈춰있는 작품과 시시각각 다채롭게 변화하는 작품 주변의 이야기, 다양한 관객, 작품과 공간의 이야기가 행복한 기분을 선물해 준다.
그게 어디든 지금 당장 미술관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