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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패턴화 된 플롯과 전형적인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클리셰를 좋아하지 않는다.(…) 짧고 함축적이고 암시적인. 그러나 나는 비밀의 문 안쪽을 항해 스쳐 지나가는 시선을 좋아한다. 그런 순간의 언어적 확장을 선호한다. 우리에게 뭔가를 불러일으키고, 긴 하루의 서막을 알리지만, 비밀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 시선.”
내가 좋아하는 글을 그녀가 좋아하고, 그녀는 그런 글을 쓰는 작가다.
인연이 늦어지는 그런 책이 있다. 읽고 싶다거나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그런 책 말이다. 조금 엇나간 비유일 수는 있지만, 첫인상이 안 좋았던 사람과 깊은 친구사이가 되는 경우와 비슷하게, 이런 책은 내 삶 근거리에서 오래 머물게 된다. 배수아 작가가 나에게 그런 인연이다. 뜨거웠던 여름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를 읽지 않았다면, 그 인연은 기약 없이 더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배수아 작가님이 번역했던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에서 느낀 문체의 자유로움과 해방감 같은 비슷한 감정을 이 글을 통해서 느꼈다. 페이지를 얼마 넘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일상과 시선을 다른 이의 문장으로 만나는 황홀함이라니, 사색과 기록의 힘은 진한 자연의 향기와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치열하고 비장하게 다가온다. 의식의 흐름대로 자유롭게 흘러가는 시선과 문장들, 전형적인 틀과 질서에서 물러나서 느슨한 듯 무심하게 읊조리는 내면의 소리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작은 숨소리 마냥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삶이 글이 될 때, 진지하고 깊지 않으면 발현되지 않는 덤덤함과 헐렁함이 좋다. 단단하고 깊은 것은 가볍고 단순해도 독자에게 충분히 뭔가를 불러일으키기 마련. 그것이 글일 때 더 깊고 깊이 파고든다.
‘농도 진한 에스프레소와 거칠고 담백한 바게트가 굉장히 한국적이다’라면 어떻게 이해할까? 이색적이고 세련된 문체이면서도 한국적인 정서가 스며든 묘한 매력의 소유자. 자유로운 해방감, 가벼우면서도 밀도 있는 사유, 도회적이고 낯선 시선들이 먹먹히 다가온다. 그녀는 한국에서는 번역작업을 독일의 작은 정원이 딸린 오두막에서는 글쓰기 작업을 한다. 스스로의 선택과 개척으로 얻어낸 두 나라, 두 문화, 두 언어 두 환경에 놓인 작가는 상반되는 두 가지 경험의 힘으로 힙한 스타일의 글을 쓰게 된 것 같다고 나는 짐작해 본다.
헤르만 헤세는 1929년 어느 편지에 이렇게 남겼다. “자기만의 고유한 삶에 대한 열망과 환경에 대한 적응 요구가 부딪치면서 고유한 인격체가 생겨납니다.” 이 상반되는 두 가지 힘이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면, 주어진 환경을 스스로 바꾸어가면서 적응해 나간 측면에서 그녀는 더 개인적이고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이런 인터뷰문을 발췌한다. “모든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언어로 자신의 집을 지어야 한다. 누구나 일생 동안 그 일에 매달려야 하며, 자신이 얻은 외국을 거주 가능하게 만들어야만 한다”(p.238)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한 삶의 방식이 작가로서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매번 기분 좋은 순간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배수아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