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선택할 때만 해도 김금희작가라는 이름은 매우 익숙하지만, 작가의 책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느슨하고 한가로운 식집사의 이야기에 편안하게 스며들었다. 바로 새로운 식물을 집으로 들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식물의 생장을 통해 발견하는 작가의 깊은 삶의 통찰은 졸린 말의 고삐를 틀어지듯 나를 긴장시켰다.
무식하게 밀어 넣듯 읽었던 시절의 책이라 생각한다. <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이란 작가의 두 작품을 읽었고, <경애의 마음>은 유독 좋아했던 작품이다. 두 작품도 같은 작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기억력 퇴화에 대한 걱정보다는 한 권 한 권 헤치우 듯 읽어내었던 마음의 조급함과 현실의 절박함이 밀려와 깊이 숨을 한 번 내쉬었다. 내가 마음이 힘들었을 때 책 속으로 빠진 것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 마음이 힘들었을 때 식물에 빠져들었던 이야기, 작가의 식물에 대한 시선과 감상이 내가 가진 불안과 아픔을 덜어내어 주었다.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고요한 생존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식물들 앞에 세상과 타인에 대한 환멸이 자취를 감춘다. 흔들리지만 흔들림이 없는 존재 앞에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본다.
자연의 일부분인 식물이 주는 고유한 정서가 있다. 거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굉장히 가깝기도 하고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한편 전혀 관심을 두지 않거나 느끼지 못할 경우에는 전혀 상관없이 존재하는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마음이 힘들었을 때 빠져들었던 책처럼 글을 쓰는 작가는 마음이 힘들 때 식물에 빠져들었다. 앞이 막막하고 마음이 무거울 때 오히려 가장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작가는 식물을 키우면서 마치 거울을 보듯 자신의 뿌리를 발견하고 단단하게 키워내기 시작한 게 아닐까. 그런 식물과 함께 하는 낙관적 하루들이 이 책 속에 모여 있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