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페이지를 펼쳐든 순간 도저히 읽기를 멈출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책장을 덮어 버린 이유는 소란스러운 공간에서 보다 고요하고 안전한 나의 공간에서 비밀스럽게 읽어야 한다는 마음에서였다. 이미 다 읽었지만 나와 물리적으로 가까이 존재해야 할 책, 언제든지 펼쳐볼 수 있도록 혹은 읽지 않더라도 눈으로 결속될 수 있도록 보이는 곳에 놓여있어야 할 책. 내 공간의 사물들은 그렇게 나와 어떻게든 바라봄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곳엔 언제나 김연수작가의 책이 있다.
이토록 평범한 것이 이토록 반짝반짝 특별해질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글을 만나 또 다른 내가 되었다.
“아, 좋다. 너무, 좋다. “ 나도 모르게 마음에서 피어나는 말에 따뜻하게 위로받고, 두근두근 가슴이 뛴다. 지금 당장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긴장과 설렘에 고양되어 느리고 느리게 문장을 따라간다. 세상과 사람을 품어 빛을 내고 그 빛으로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게 만들어 주는 단단한 힘을 가진 문장들, 소란스럽지 않게 느린 호흡으로 글을 읽어가다 보면, 삶의 운명을 믿게 되고, 그 운명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희망에 안도한다.
<일곱 해의 마지막>이라는 제목에 끌렸고, 내게 말을 걸었다. ‘일곱 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심 없이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축적되었을 결과물을 상상했지만, 일곱 해의 공백에는 시인의 시가 사라졌다. 압도적인 현실의 무게에 희망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절망적인 상황에 그가 가졌을 아름답고 간절한 마음 이 무섭도록 외롭게 느껴졌다. 시인 백석의 시간임을 미리 짐작했더라면 나는 이 책에 마음을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다. 읽다 말고 멈추고, 궁금해도 여유를 가진 것은 짧고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시인의 시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살아가다 보면 느닷없이 한 문장이 떠올라 그 문장에 의지할 때가 있고, 살아가면서 항상 곁에 두고 언제든지 펼쳐 들고 싶은 오래 함께하는 책이 있다. 그는 김연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