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멜랑콜리아

by Re나


“정작 오래된 우울에는 슬픔이 없다. 마른 우물이 그렇듯, 감정이 휘발되고 바래고 건조해져서 차라리 평온하다.”


[맥도날드 멜랑콜리아]의 한 문장, ‘죽고 싶은 마음으로 매일을 사는 사람’의 무서우리 만큼 위축된 마음과 끔찍한 공허함은 위장된 평온함으로 오늘과 현재를 잃게 만든다. 나조차 외면하고 있던 내밀한 내 모습을 초연하게 읊어주는 것만 같아서 내 삶과 너무 가까이 있는 말인 것만 같아서 밑줄을 그었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으며 쓴웃음을 지었더랬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 특유의 감성은 우울을 이런 방식으로 잊어버리기도 한다.

못 견뎌하면서도 견뎌내는 것은 견뎌내는 것에 익숙해진 습관 같은 것이 9할이고 견뎌내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도무지 모르기 때문이 1할이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결국 뺨을 타고 흘러내리면 미세한 희열과 해방감에 다시 겪어내고 이겨내야만 하는 습관의 작은 힘이 해피엔딩의 공식처럼 반사적으로 작동한다. 무너진 마음의 간절한 신호가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세밀하게 조정되는 것에 안도하며 다시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그냥 휩쓸려 살아내지 말고 깊이 의식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다시 한번 병적인 체면을 걸면서…


2014년 가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이 한데 모여있는 파리로 향했다.

우두커니 멍 때리는 시간 동안 부정적 감정과 마음들이 새겨가는 무언가를 의도적으로 제거하고, 가만히 멈춰버리면 자꾸 그리워하거나 후회하게 되는 슬픔에서 잠시라도 벗어나야 편안하게 숨을 좀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을 생각하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던 시절 파리행 비행기 안에서 다소 흥분하고 고양되었던 나를 발견하곤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고작 잠시 내가 있던 곳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멀리 떠나간다는 사실만으로 예민하게 굳어버린 표정과 고집스럽게 닫쳐 있던 무거운 마음들이 느슨해지다 못해 태평해지기까지 했다. 파리를 다녀온 뒤 이전의 나와는 분명히 다른 내가 되어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었다. 마법 같은 공간이동이 나름 성공적인 탈출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마치 한 권의 책을 읽은 후의 내가 그 이전의 나와 기묘하게 달라졌다는 뿌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보다는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 외부와 단절된 전혀 다른 감각의 안테나를 세우고 오래도록 책과 마주하는 시간 자체가 나를 지탱하고 있다고 생생하게 느끼게 되는 것처럼.


익숙한 듯 낯선 도시에 드리운 무도한 해방감에 취해 파리 곳곳을 부지런히 걸어 다니며 흔적을 남기고 나만의 이야기를 쌓아갔다. 낯선 풍경을 걸으며 사방에서 투사하는 눈부시고 아름다운 광선들로 어지러운 오후는 정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에펠탑을 맞이하는 아침이 늘어날수록 균형을 맞춰갔고 작게 맴돌던 슬픔과 우울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공간에서 무기력하게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버거웠던 하루를 이겨내는 방법이 집에서 멀어져 가면 갈수록 더 단순하고 쉬워졌다. 걸으면 걸을수록 예민한 감각들이 생생하게 살아났고, 몸의 신음과 마음의 부서짐이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들 사이로 휘발되어 날아갔다.

인간이 풍경을 압도하는 그림을 찾는 것이 드문 것처럼 풍경이 인간을 압도해 버린 현실 곳곳이 자연스럽게 거대한 갤러리가 되었다. 시간과 장소의 향유를 제대로 구현하는 파리 걷기는 잡다한 생각들과 응어리진 감정덩어리를 도려내어 잠시 나와 분리시켜 주었다.


어디에서나 시선을 사로잡는 에펠탑과 반짝이는 센강을 중심으로 어처구니없도록 아름답게 펼쳐지는 다채로운 풍경에 압도되어 ‘나는 왜 그토록 힘들었는지!’ 과거의 시간이 흐릿하게 뭉개져 버렸다. 내 마음에 온갖 파도가 휘몰아쳐도 고요히 위로해 줄 수많은 예술가들의 조용한 그림 앞에서 온 감각의 날을 세워 응시하고 카메라로 담아내고 사라지지 않는 잔상들을 바지런히 마음에 담아 두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회랑에서도 근엄하게 줄지어 늘어선 사각 프레임 사이사이 어둑한 공간으로 부드럽게 드리우는 빛 앞에서 자주 발걸음을 멈췄고 멍하니 응시하곤 했다. 명품숍으로 둘러싸인 쇼핑거리를 막 구운 바게트를 먹으며 걸었다. 지쳐 들어간 카페 드 플로르의 진한 커피에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향기를 느끼고, 한낮의 더위를 식혀준 샴페인 한 잔의 상큼함은 여전히 코끝에 머물러 생생하게 살아난다. 몽마르트르 곳곳에 붙은 툴루즈 로트렉의 포스터가 아리송하게 마음으로 들어오고 미술관에서 로트렉의 작품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렀고, 오르세 미술관의 로트렉 작품 <욕실>은 나의 마음을 움직였고, 누군가의 뒷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자꾸자꾸 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렁주렁 쇼팽백을 들고 다니며 마카롱 한 입 젤라토 한 입으로 잊고 있던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즐겼다.

카페 야외 테이블에서 에스프레소잔을 놓고 르몽드 지를 읽던 빠리지앵,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웨딩촬영, 거리의 예술가들,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 작은 꽃다발을 들고 앵발리드를 향해 걸어가는 멋쟁이 할아버지.


파리를 다녀와서 가장 먼저 읽은 책은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였다. 파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파리’를 키워드로 웹서핑을 하는 것은 한 동안 퇴근후 하던 나의 루틴이었다. 2달 전쯤 한국에서 출간된 밀란 쿤데라의 신간 기사에 동공이 확장되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애정하는 작가의 신간만큼 두근거리게 하는 책이 또 있을까. 무려 14년 만에 독자를 찾아온 선물 같은 [무의미의 축제]는 그의 마지막 소설이 되었다. 프랑스 어딘가 나와 같은 하늘아래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던 내가 사랑하는 노작가의 신간을 떨리는 마음으로 읽어갔다. 파리의 뤽상부르 공원에서 시작해서 뤽상부르 공원에서 끝나는 소설은 주인공 알랭, 라몽, 칼리방, 샤를 네 사람의 생각과 대화 그리고 일상의 평범한 에피소드를 무심하게 병렬적으로 나열하여 보여준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모든 순간들. 파리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생생하게 감각했던 거리와 선명한 장면들이 문장을 읽어가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갔다. 전혀 다른 질감과 농도로 다시 여행하듯 새로운 깊이와 의미 같은 것들이 덧씌워져 느릿느릿 다가왔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에게 파리를 걸으며 듣게 되는 삶의 의미처럼.


라몽은 뤽상부르 공원을 거닌다.


“알랭이 여성의 매력의 여러 근원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것과 거의 같은 순간에, 라몽은 뤽상부르 공원 바로 옆, 한 달 전부터 샤갈의 그림들이 전시된 미술관 근처에 있었다. 그림을 보고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는 도저히 자신이 저 끝없는 줄, 매표소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는 줄에 선뜻 들어가 그 일부가 된다는 건 엄두도 못 내리라는 것을 벌써 알았다. 그는 사람들을, 지루함으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들을 쳐다보았고, 저 사람들의 몸과 떠드는 소리가 그림들을 다 뒤덮어 버릴 전시실을 떠올렸으며, 그래서 잠시 후 몸을 돌려 공원에 난 길로 접어들었다.”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감정의 실핏줄마저 터져버려 망가진 몸의 신호를 알아차린 것은 숨을 쉴 수 없는 무서운 시간들이 잦아지면서부터였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내야 하고,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맹목적 욕망과 성취하는 삶이 내게 가한 해를 마주하는 고통과 주저앉은 나. 파리는 그저 멈춤이다. 현재를 살지 못하는 내 마음이 머물러 버린 과거와 현실의 비참함을 회피한 안온한 미래와의 작별. 멈추어야 바라볼 수 있고, 보이지 않던 소중한 것들의 의미가 선명해져 가볍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파리와 멜랑콜리아 그리고 멈춤과 밀란쿤데라.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