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시작하는 아침이 좋다. 시끄럽고 기분 나쁜 알람소리 없이 스르르 자연스럽게 눈을 뜨는 아침, 눈을 뜨자마자 느닷없이 세면대로 향하는 바쁜 발걸음 대신 아침의 공기를 대면하는 창가로 향하는 거북이 발걸음, 중간에 맘이 바뀌어 딴짓을 해도 무해한, 시간의 방해 없는 목적 없는 발걸음으로 시작하는 아침이 좋다.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채울까 상상하는 느린 이 아침이 좋다.
읽고 있는 책과 노트북을 들고 서둘러 카페로 달려가는 대신 가벼운 운동화를 싣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잠시 동안 충실하게 내 몸으로 사는 것이고, 시간의 부자가 되는 것이다. 퇴사를 하고도 2년의 시간이 흘렸지만 내게는 후자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더 필요하다. 깊은 밤 느닷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여전히 몸과 마음을 바닥으로 짚어 던져버리고 싶은 극단적인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이 부족하니까. 인생은 가졌던 것을 잃어 애도하는 마음과 갖고 싶었던 것을 얻어 기뻐하는 마음 사이를 진동하며 사는 것 이라는데 한쪽으로 현저하게 기울어진 마음에 진동을 채우는 시간이 걷기인 것이다. 발끝으로부터 차곡차곡 깨어있는 순간을 쌓아가고, 그렇게 채운 시간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숨을 쉬게 해 준다.
“세계가 우리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파악하기 어려워질 때 그 지주로서 남는 것은 몸이다.” 걸으면 걸을수록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은 이 한 문장으로 응축되어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느슨해지고 한편으로 무료한 날이 지속되면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힐 정도의 가벼운 운동강도를 즐길 수 있는 산책길을 선택한다. 부산의 몽마르트르라고 불리는데 동의하지 않지만 해안선을 따라 멋스러운 거목들 넘어 반짝이는 윤슬의 예쁨을 즐기는 달맞이길을 향한다. 막상 오르막을 오르면 바로 옆으로 쌩쌩 달리는 찻소리에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지나치게 속도를 내는 차에서 들려오는 소음 같은 음악에 내 고요가 방해받기 일쑤지만, 청각으로 남아 있는 좋은 기억들만 집요하게 불러일으키고 그날의 바람과 나무와 빛들이라는 단순한 형태의 날들이 쌓여 반복적이고 자연스럽게 재현된 고요한 이미지로만 남겨 놓은 마법 같은 길이다. 달맞이와 미술관, 달맞이와 커피, 달맞이와 명상 사이에는 늘 걷기가 있다.
움직임과 고요가 공존하는 산책길에서 신체와 마음이 합쳐진 깨어있는 시간은 알아차림에 이르는 가장 쉽고 명확한 방법이다. 진정한 내면의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생각과 느낌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몰아내려고 애쓰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생각을 있는 그대로 지켜볼 수 있을 때, 그 속에 함몰되지 않는 힘이 생겨난다. 나 자신을 하나의 대상으로 관찰하면서, 어떤 판단도 하지 않고 생각과 느낌 그리고 감각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가는 깨어있는 상태를 명상에서는 ‘알아차림’이라 부른다. 거친 호흡을 다스리고 내 존재의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어 나의 주변과 그에 반응하는 내 안의 변화에 순수하게 주의를 기울이면 엄청난 행복감이 밀려온다. 단 1분이라도 단 5분이라도 단 한순간이라도 습관적인 불안과 생각을 내려놓고 시간의 가속을 멈춰본다. 가볍게 내 호흡을 느끼고 일상 속 나와 현재의 모든 순간에 충실히 머물러 본다. 더 많은 바람과 더 많은 하늘, 더 많이 깨끗하고, 더 많이 아름다운 사이와 사이.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던 미국의 현대미술가 척 클로스(Chuck Close)는 모자이크 방식의 추상적인 표현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초상화 작품만큼이나 멋진 말을 남겼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서서 일하러 간다.”
삶과 예술의 경계를 지워내고 삶 그 자체가 예술인 삶을 향한 그의 태도를 담은 이 말에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난다. 난독증에 하반신 마비까지 온갖 장애를 극복한 척 클로스는 10살 때 안면인식 장애 진단을 받게 되었고,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새겨두기 위해 시작한 작업들이 엄청난 크기의 캔버스에 모공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그려내는 초상화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척 클로스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의 감각과 직관의 힘으로 그린 그림이 사진처럼 정확하고 정교한 극사실주의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그리드와 규칙, 수없이 많은 반복으로 완성된 작은 사각형 속 이미지는 언뜻 보기에 추상적인 이미지의 조합 같지만 멀리서 보면 사진을 보는 듯한 선명하고 사실적인 인물이 되어 신기하게 나타난다.
출근 전 피트니스에서 운동을 하고 사우나에 들어가기 전에 통창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가부좌를 틀고 바르게 앉았다. ‘이제부터 나의 명상을 시작하는 거다.’ 처음 스스로의 힘으로 홀로 명상을 시작한 날이다. 책으로 명상을 시작한 나는 이것이 정말 나를 바꿀 수 있을지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될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했다. 닥치는 대로 세계적인 명상 그루들의 책을 읽고, 기사와 자료집을 찾아 읽었다. 명상모임에도 규칙적으로 참여했다. 명상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15년 가을 즈음이었다. 광화문 모언론사 건물 지하에서 매주 한번 진행하는 명상프로그램에 처음으로 참여하면서 나의 하루 명상도 시작되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해 명상 선생님의 안내와 명상 도반들의 에너지에 의지하다 보면 몇 번이고 주의가 흩트려져 흔들리곤 하지만 30분에서 40분 정도 참고 앉아있을 수 있었다. 매일 아침 가볍게 땀을 흘리고 나서 10분짜리 모래시계 앞에서 눈을 감자말자 순식간에 잠이 몰려와 몸이 기우뚱하면 자주 좌절감이 몰려오긴 했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면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몸을 바로 세웠다. 그래도 자꾸 졸리면 눈을 부릅뜨고 바로 앞에 보이는 아무거나 뚫어지게 쳐다본다. 10분이라도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몇 주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가볍고 온전히 나의 고요에 집중할 수 있었고, 행복감으로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매일 아침 10분 명상을 시작으로 그 시간을 조금씩 늘려나갔다. 나태함과 게으름이 몰려올 때마다 원래의 나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3개월을 꾸준히 실천했다. 감기 몸살로 몸이 아파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는 동안 겨우 하루 10분 명상이 그간의 내게 얼마나 필요한 시간이며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단 10분의 명상 부재로 내 삶에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난 얼마나 나쁜 상태를 가지고 오랫동안 살아왔는가? 도대체 왜?” 단 10분 명상으로 삶의 고통이 완전히 사리지지는 않지만 고요함에 머무는 동안 고통을 다스릴 내면의 힘이 생겨난다는 사실에 두렵기도 했다. 아주 최소한의 방법으로 삶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혹은 내 삶을 완전한 성공으로 바꾸기보다는 그저 편안하게 단 하루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거나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멀기 가기보다 나로 온전히 고요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가장 가깝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깨달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척 클로스 작품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눈을 떼지 못한 작품 한 점이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사실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나는 졸리면 졸리는 대로 집중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대로 그냥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더 나아지려고 애쓰거나 무언가에 도달하려는 의도 없이 내가 느끼는 감각과 생각과 느낌들이 있는 그대로 선명하게 다가올 때까지 그냥 계속 그렇게..
노동에 가까울 만큼의 붓질을 얼마나 끊임없이 반복하면 감각과 기억으로 몸에 벤 숙련된 기예들이 아름다운 예술이 되는 걸까. 조현화랑의 이배 작가님의 작품도 달맞이길 산책길에서 만났다. 색을 배제하고 먹으로 그린 그림의 하얀색과 검은색, 숯의 마티에르와 먹의 붓자국으로 신체에서 발현되는 역동적이고 안정적인 움직임과 마음에서 비롯되는 고운 호흡의 결이 느껴졌다. 달맞이의 작은 갤러리에서 이배 작가님의 그림을 따라 거니는 동안 몸과 마음이 하나 된 경지에서 발휘하는 예술가의 에너지가 손쉽게 나를 알아차림의 시간으로 안내했다.
티베트에서는 명상을 ‘곰(GOM)이라 부르는데, ’익숙해지다’, ’습관이 되다 ‘라는 의미를 가진다. 명상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의 수행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온전하게 하는 수행의 과정이기도 하다. 퇴사를 하고 부산에 정착하고 나서 달맞이길의 한 명상원에서 차수업도 하고 명상수행에 참여했다. 달맞이의 고요한 아침 에너지를 받으며 집중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2시간을 훌쩍 넘어버린 시간 동안 새롭게 경험하며 발견한 내 모습이 기특했고 습관이 되어 익숙해진 것들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긴 알아차림의 시간 동안 수도 없이 올라오는 불편함과 고통스러움이 눈을 뜨자마자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 시간과 풍경이 내 마음에 어떻게 기록되었는가! 그 순간은 또 얼마나 완벽했던가! 나의 불행을 스스로 관리하기 시작하고 나의 나약함을 일깨우는 씨앗을 뿌렸던 시간들을 자주 떠올린다. 달맞이길 걷기 그리고 떠오르는 모든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