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수영선수 제의를 받았었고 중학생 때는 육상선수를 했다. 모든 운동을 평균 이상 하는 편이었지만 운동을 업으로 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선수는 그만두었지만, 운동과 밀접하고 선수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고 중학교 체육 선생님의 제안으로 물리치료사를 꿈꾸게 되었다. 선수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꿈꿨던 나는 현재 재활의학과 의원에서 일하고 있다.
물리치료과에 진학 후 자연스럽게 스포츠 물리치료사를 꿈꿨다. 학기 중엔 스포츠 동아리에서 테이핑, 케이스 스터디 등 필요한 공부를 했고 체육대회가 열릴 때 선수 대상 부상 방지와 통증 완화를 위해 테이핑을 했다. 또한 엘리트 선수를 대상으로 스트레칭, 재활 운동 등의 케어를 하러 다녔다. 주말엔 선수 트레이너가 되기 위한 교육을 들었다. 실습을 가지 않는 방학엔 운동선수들의 동·하계 전지훈련을 따라가 경기장 지원 및 재활캠프 스탭으로 일했다.
동계 전지 훈련파견에서의 일이었다. 이미 하계 전지훈련을 다녀온 경험이 있고 전공이 물리치료가 아닌 동료들에 비해 이론을 많이 알고 있어 스터디를 할 때 조를 이끌었다. 매일 잠을 3시간 이상 잔 적이 없었고 2주간 더 일을 하는 잔류 신청을 했다.
나에게 돌아온 건 “여자들은 힘이 부족하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경기만 가.”, “여자는 잔류멤버가 될 수 없어.” 였다. 오기가 생겼다. 꿋꿋하게 잔류 신청을 했고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휴무를 반납하고 고등, 대학생 경기에 따라갔다. “너 그냥 구경하러 온 거 아니야? 그냥 뒤에 빠져있어.”, “여자가 테이핑해 줘서 오늘 더 잘 뛰겠는데?” 남자 동료와 지도자의 발언에 정말 이 길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미련이 남아 스포츠병원에 취업도 해봤지만, 급여, 대우, 업무 그 무엇 하나 내가 꿈꾸던 일이 아니었다.
그 길로 정형외과에 취업해 열전기 치료를 시작했다.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환자들이 물리치료실을 방문했고 환자들이 어디가 왜 아픈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그저 루틴대로 정신없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를 치료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보람없이 그저 기계같이 일을 하는 날들이 지나갔다. 환자 한명 한명에게 집중하고 개개인에게 맞는 치료를 하고 싶었다. 이후 동료 선생님들의 조언을 얻어 다양한 교육을 듣기 시작했고 도수치료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