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中
"우리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 (19쪽)
독서모임을 하면서 이미 읽었던 책이지만 책장을 뒤적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꺼내어 보았습니다. 제목부터 매력적인 이 책은 장르의 경계를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책이었습니다.
'무엇이 정상적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끊임없는 되물음이 이 책의 주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SF 소설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있는 편이라 처음 마음 잡고 읽기 시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데 어렵지 않았죠. 길지 않은 호흡을 가진 문체와 흥미로운 스토리가 굉장히 매력적인 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평소 고민하고 생각하는 분야와 함께 고민하기 좋은 주제들로 엮인 소설집이라는 점이 이 책에 대한 저의 생각을 훨씬 긍정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래서 책을 읽는 시기, 맥락, 심지어는 나이도 책에 대한 이해를 달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겠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기도 했죠.
'정상성'의 개념 안에 포함되는 자아 또는 자아와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존재들과 그 바깥에 머무는 타자들 사이에서 공생은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은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188쪽)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명쾌한 해석과 문제에 대한 해결이 수학적으로 계산되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이 지니는 모호성은 그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정의역에 따라 달라지는 치역 사이의 관계처럼 명징하고 객관적인 지표에 대한 확신이 더 요구되고 강해지는 시기에 김초엽의 소설이 마무리하는 '어쩌면'이라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김빠진 맥주를 마신 것 같은 찝찝함을 줄지 모르죠. 하지만 김초엽의 소설에서 말하는 '어쩌면'이라는,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라는 모호한 시간성이야말로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던지는 물음에 대한 가장 자명한 답변인 것 같습니다. 나아가 당장 명쾌한 답을 주진 못하지만 언젠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함께 해야만 할 것임을 역설하는 당찬 주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초엽의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바를 접속사로 표현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일지 모릅니다.
'문지방의 역사'를, 거창하게, 본인의 교직관, 수업 철학에 녹여내는 연습을 하는 중인 요즘 이 책은 본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소설이 되었습니다. 문의 바깥도 아니고 안도 아닌 공간을 들여다 보는 일의 어려움과 모호성, 그를 위해 투여해야 하는 노력에 비해 돌아오지 않는 비경제적인 결과 등이 문지방에 대한 관심을 언제나 차단해 왔고 외면해 왔다고 생각하는 저에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마주하게 될 사회에서조차 그런 상황이 반복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입니다. 인간은 결국 생각을 하는 동물이고 경험으로 알고 있는 바를 넘어 선험적으로도 사고할 수 있는 '고등' 생물이기에 비록 '소설'일진 몰라도 경험적이지 않은, 어쩌면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하고 있을지 모르는 '지금의 미래'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이 책을 일독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