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된 우연은 실험을 통해 필연을 만든다

흙과 불, 시간과 감각의 사유적 융합

by Curapoet 임대식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완결된 구조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고 흔들리는 상태 속에 놓여 있다.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 물리적인 경험으로부터가 아닌 이미 선험적으로 사고하고 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영역은 우리가 감각하고 지각할 수 있는 삶의 핵심적인 요소이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전제 조건이다. 즉, 물질적인 대상을 파악하고 그것을 다시 우리의 정신적 경험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형성되는 기억의 변형과 그로 인해 비롯되는 상상력의 증폭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과 공간이라고 하는 존재의 조건에서 예술적 영역으로 사고가 확장되는 순간의 발현이기도 하다.


구경모 작가의 도자 회화는, 지금을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단순하고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조건 위에서 시작된다. 가장 접근하기 쉽고 그 역사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의 재료로서 흙은 자연 그 자체였고, 다루지 못했던 자연의 한 부분이었던 불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불에 구워진 흙은 이질적인 두 자연의 요소들의 새로운 화합의 국면을 만들었다. 하늘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지상으로 던져진 불을 다루게 되는 순간부터 인간은 자연을 순종의 대상을 넘어 타협과 가능성의 영역으로 확장시킬 수 있었으며 그 첫 번째 물질변화의 발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도자가 만들어 졌다. 그렇게 자연과 인간, 감각과 기억, 물질과 시간 사이의 미묘한 관계 설정은 시작되었다. 작가의 도자 회화는 이러한 흙과 불이라는 가장 원초적 재료, 조형요소는 하나의 사물로 존재하고 있음을 넘어 작가에게는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응답을 찾을 수 있는 존재로 그 위치를 점하게 된다는 것이다.


너무 간단하게 정의하는 듯 하지만 본 전시를 통해 작가가 택한 조형 언어는 ‘선’이다. 선은 기하학적 질서의 기초이자 감정과 의지의 흔적이자 가장 미세한 ‘차이’의 시각적 표현이다. 작가에게 선은 기계적이고 절대적인 형태가 아닌, 감각의 시간과 물질의 시간 속에서 유기적으로 흩어지고 휘어지며 다시 중첩되는 움직이는 구조다. 이는, 흙으로 묻고 불로 대답을 찾았던 기존의 작가의 작업적 감수성을 오히려 불이 묻고 흙과 작가가 대답하는 쉽게 말해 그리는 행위, 회화적 행위가 가중되면서 만들어지게 된 구조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선적인 직선이 아닌, 사유의 방향을 탐색하는 나선적 구조로 드러나며, 반복과 차이 속에서 생성과 소멸을 경험하는, 하나의 에너지 영역을 구현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작가의 회화 즉, 풍경은 지구 멀리서 바라본 풍경이나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다층적이면서 선과 선 사이의 공간간의 유기적인 관계망이 형성되는 풍경이기도 하다. 이 선은 불의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반복적인 소성을 통해 도자의 물리적 과정을 형식적인 프로세스가 아닌 반복적으로 불과 흙의 물리적 상대성을 지극히 완화시켰던 작업의 결과다. 따라서 그의 도자 회화는 불과 함께 다시 복원되었다 사라지고 또 다시 드러나는 작가만의 회화적 궤적이었다.


이러한 선들은 특정한 대상이나 모티프를 재현하려 하기 보다, 오히려 그것들은 기억과 감정, 체험과 내면의 누적을 상징하는 '감정의 풍경'을 구성한다. 이 풍경은 하나의 시점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시공간의 흐름 속에 위치한 유동적이고 다층적인 시선들―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부감의 시점과, 흙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앙각의 시점을 넘나들며―현존하는 감정과 존재의 위치를 끊임없이 흔든다. 작가는 이 시선의 전환을 통해 관람자로 하여금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구조, 감각의 프레임 그 자체에 대한 다 방면의 사고의 틀을 바꿀 수 있기를 유도한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앞서 이야기 했듯 ‘불’의 존재론적 전환이다. 기존의 도예 과정에서 불은 결과를 결정짓는 판단의 주체로 작동해 왔다. 질문을 던지는 쪽은 작가이고, 불은 그것에 대해 응답하는 재료이자 자연적 현상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번 작업에서 불은 단순히 응답하는 존재가 아닌, 질문을 제기하는 능동적인 타자로 바뀐다. 때로는 불이 먼저 말을 걸어오고, 작가는 그것을 읽고 해석하며 다시 자신의 언어로 응답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도예라고 하는 전통적인 제작자 중심의 결정권을 해체하고, 자연과 작가, 물질과 감각 사이의 수평적이고 상호 협력적인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대화로 이어진다. 작가는 “나는 흙이 기억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말한다. 이 말은 작가의 감성적이면서 시적 표현을 넘어, 창작 구조 자체에 대한 작가적 사유의 결과론적 선언이다. 모든 물질은 그 물질과 접했던 또 다른 물질 혹은 그 물질과 관계했던 관계주체들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사랑했던 사람이 남긴 물건들에 그 사람의 기억과 감정들이 머물러 있다고 느끼듯이 말이다. 그와 반면 불은 그 물질의 변화를 유도하는 이야기 즉 나름의 언어를 만들어 낸다. 작가의 평면 도자적 조형언어는 단순히 형태를 구성하고 익숙했던 풍경들을 기억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서로에게 각각 새기고 그에 따라 오고 갔던 정신적 사유들 즉, 심층적 대화들을 축적하는 일종의 서사적 행위이며 실천이다. 따라서 작가의 작업, 그 속에서 작가는 거창하게 대상을 재현하고 우리의 기억을 재편성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물질과 감각, 시간과 자연 사이의 중재자로 위치하게 된다.


또한, 본 작업을 통해 작가는 단지 도자 작품의 시각적 감상에 머무르지 않기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듯 하다. 그와 맞닿아 작가는 도자라는 매체가 기존의 회화와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사유적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감각과 사유, 질문과 응답, 물질성과 정신성 사이의 경계에 대해 전통성을 고수하고 때로는 그것을 해체하는 사유와 실천의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 도자는 더 이상 정적인 조형이 아니다. 그것은 살고 있는 시대와 대화하고 그로 인해 의식하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는 존재들에 답하고, 같이 동시대를 살아 갈 수 있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인정할 수 있는 사유의 언어로 확장될 수 있는 유동적인 조형이다. ‘우연을 계획하고, 필연을 실험한다’는 이번 작가의 선언처럼, 작가의 평면도자는 우연성과 필연성 사이에서 정의되지 않는 무한 반복적인 대화의 기록인 셈이다. 하지만, 그 반복의 반복은 결국 창조의 필연적 요소가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원초적 자연의 대화가 기록된 작가의 평면도자를 통해 과연 동시대의 가장 원초적인 사고의 기반이 되는 감각과 기억으로부터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사유의 방식을 찾아 볼 수 도 있을 것 같다.
(글. 임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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