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호두 기획전시 "회화, 교차된 시대의 흔적"
현대미술은 기술 발전에 발맞춰 끊임없이 매체 실험과 감각적 진화를 거듭해 왔다. 특히 디지털 기술과 영상, 설치 등 새로운 매체와 결합한 표현 방식은 관람객의 시각과 신체적 경험을 자극하며 예술의 지평을 확장해 왔다.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현대미술에서 회화는 종종 전통적, 수동적, 혹은 진부한 매체로 인식되어 왔던 것은 사실이다. 이는 ‘회화’가 더 이상 동시대적 감각을 담아내기에 그 매체적 한계로 인해 부적절하거나, 표현의 최전선에서 밀려나 있다는 고정관념으로 고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우리는 회화의 본질과 지속성, 그리고 여전히 유효한 질문으로서의 회화적 사유에 대해 다시금 성찰해 보아야 할 시점 혹은 시기임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회화, 교차된 시대의 흔적》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게 된다. 따라서 본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회화 흐름을 관통해 온 1980~1990년대 작가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회화가 어떻게 시대의 현실과 사회적 감각을 회화적으로 해석하고 형상화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현재 천안 및 인근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지역 작가들의 회화적 시선을 병치함으로써, 서로 다른 시대적 감수성과 표현 방식이 어떻게 교차하고, 충돌하며, 새로운 회화적 지평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과거의 회화가 동시대의 시선과 만나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회화라는 장르의 지속성과 유연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토탈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80~90년대 한국 회화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통해 해당 시대의 시각적 언어와 형식적 실험을 조명하고, 둘째, 천안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회화 작업을 중심으로 오늘의 회화가 직면한 표현의 지형과 미학적 감각에 대해 살펴보고, 셋째, 이 두 세대의 작가들이 전시 공간 안에서 서로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회화의 ‘형식적’, ‘내용적’, ‘역사적’ 층위를 탐색하게 된다. 이를 통해 관람자는 회화라는 장르가 어떻게 시대를 담아내는 그릇이자, 시대를 넘어 사유의 도구로 그 기능이 가능한지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전시가 개최되는 천안은 지리적으로 대한민국의 중심부에 위치한 도시로, 예로부터 남북과 동서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역사적 교차지로서의 지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독립운동의 상징적 장소인 이 지역은 최근 들어 K-컬처 전시관 건립, K-Art 엑스포 등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적 정체성과 예술적 비전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이와 같은 지역적 맥락 속에서 본 전시는 ‘회화의 교차’를 단지 세대 간의 예술적 비교로 한정 짓지 않고, 공간과 시간, 지역과 장르를 넘나드는 넓은 의미의 교차적 해석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
본 전시의 차별화된 기획은 회화의 ‘서사적 가능성’에 있다. 감상자의 시선과 해석을 유도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통해 회화가 담고 있는 시대의 흔적과 작가의 응시를 보다 명료하게 전달하며, 전시공간의 물리적 구조 또한 이러한 내러티브를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개로 활용하게 된다. 회화 작품을 단순히 벽에 걸린 오브제로 소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관객의 동선과 참여, 감각의 반응을 유도하는 체험형 전시로 확장함으로써 회화의 새로운 감상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게 된다. 특히 디지털 요소와의 융합, 작가와 관객 간의 상호작용적 장치들을 통해, 회화가 과거의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성을 지닌 살아있는 언어로 기능하고 있음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
《회화, 교차된 시대의 흔적》은 시대의 결을 따라 회화가 남긴 흔적을 더듬는 동시에, 그 흔적들이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다시 읽히고, 다시 쓰일 수 있는지를 확인함으로써 회화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재를 사유하고 미래를 제안하는 살아 있는 예술임을 증명하는 작업임을 다시 한번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전시가 회화를 통해 세대와 지역, 시대와 감각을 연결하고, 그 속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대화를 여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