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철 작가 개인전 <GROUND>, 6월20일~7월13일, 아터테인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아무런 판단의 정보도 그렇다고 소통의 능력도 없었을 때, 그나마 가장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 기억이 없었다는 것이다. 판단의 의미조차 모를 때, 우리는 그저 눈으로, 냄새로. 촉각으로 그리고 소리로 세상을 인식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너무나 순수한 정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단순한 판단의 재료였던 감각의 정보들은 결국 우리의 감수성을 넘어 욕망으로 번지면서 오감을 뛰어넘는 감각 즉,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정체성으로 구체화되고 그것으로 같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만들게 되면서, 인간의 오감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감각인 사회를 바라보는 눈치감이 생겨나게 되었다.
정재철 작가의 회화는 이러한 눈치감을 과감하게 빼버리면서 발견되는 충돌로부터 시작된다. 그 충돌은 색과 물감, 재료와 제스처, 사유와 감정이 직접적으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하나의 층위, 곧 겹겹의 시간과 사고가 퇴적된 회화적 지층을 만드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이 지층은 눈의 감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붓질과 긁기, 쌓기와 지우기 등 반복되는 정신적 추상 행위를 통해 축적된 시. 공간적 물성이다. 정재철 작가는 바로 회화 자체가 지니고 있는 시간적 쌓임 즉, ‘지층성’ 속에서 사유하고, 다시 그 사유의 흔적을 물성으로 되돌린다. 그의 추상은 늘, 타협 없는 이러한 표현의 욕망을 바탕으로, 쌓이는 물감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화면 사이의 치열한 공방과 타협을 겪는다. 그리하여 그의 화면은 곧 시대의 모순과 늘 애매했던 일상적 판단에 대한 새로운 질문의 방향성을 찾는다.
입버릇처럼 이야기 해 온 작가의 말을 대변하듯이 그의 회화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문제의식은 ‘모순’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아프가니스탄의 내전, 독재 정권 하의 국가 폭력과 시민 저항, 그리고 한국전쟁 등 그가 언급해온 구체적인 사례들은 모두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혹은 외면한 결과로 초래된 비극이다. 우리는 늘 ‘더 나은 세상’을 말하면서도 누군가의 희생을 ‘어쩔 수 없는 대가’로 간주해왔다. 다수의 안녕을 위해 소수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이 잔혹한 자기모순은, 단지 사회의 시스템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에 깊숙이 각인된 구조적 모순이다. 정재철 작가는 이러한 본질적 딜레마를 회화의 언어로 끊임없이 질문해 왔으며, 그리고 그 질문은 거침없이 쌓여지는 그의 색과 캔버스의 대한 무한한 신뢰에서부터 답을 찾기 시작했다. 이는 그의 대표적인 작업방식인 즉흥적으로 그리는 행위가 오히려 가장 깊고 넓은 사유에서 비롯된 추상적 행위였음을 증명하는 작업의 근간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작업 방식은 작가에게 있어 사유와 행위의 반복적 수행의 결과이기도 하다.
작가에게서 《Ground》는 그러한 모순의 토대를 상징한다. 물리적 의미로는 회화의 ‘바탕’(ground)이지만, 동시에 인간 사이에 가능한 이해의 기반(common ground), 혹은 대립과 충돌 이후에 도달할 수 있는 ‘타협의 흔적들’을 상징하는 은유적 공간이기도 하다. 정재철 작가는 전작 《Middle Ground》를 통해 이미 상반된 입장과 가치관 사이에서 형성되는 중간지대를 탐구한 바 있다. 《Ground》는 그 사유의 지형을 더욱 심화하며, 추상회화의 방식으로 인간 내부의 균열과 외부 세계의 충돌을 다시 그려낸다. 여기서 작가의 회화는 단지 감각의 매체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정의할 수 없는 삶을 지탱하고 감당할 수 있는 일종의 정신적 공간으로서 회화다. .
정재철 작가의 회화는 우리가 편안하게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이미지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의 화면에는 명확한 형상도, 스토리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형상과 스토리의 부재는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감정과 사유, 충돌과 타협이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물질적 흔적으로 확장된다. 그의 물감은 그 자체로 상황과 정서를 응축하는 매개가 되며, 화면 위에서 스스로 그 자체 공간적 구성을 찾는다. 특히 작가의 즉흥적 추상행위 이면에는 숨을 멈추고 한 획, 한 획 긁어 내야 했던 그만의 바탕 작업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명상과 같은 극도의 정적인 행위를 감내해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가는 모순되게도 이러한 극도의 정적인 작업 위에 정확하게 반대되는 즉흥적 회화 행위를 통해 작업을 완성해 간다. 이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참선에 가까운 행위 위에 무의식으로부터 끌어내는 일종의 동적 추상행위가 결합되는 순간이다. 결국 작가의 추상은 즉흥과 절제, 충동과 사유가 치열하게 공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는 회화가 사유의 본질적인 물음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정재철 작가의 작업은 굳이 따지자면, ‘추상’이라는 회화 장르에 속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추상은 단지 감정의 자유로운 표출이나 무의식의 분출과는 다르다. 그의 추상은 명확히 사유의 레이어를 지닌다. 그는 추상의 언어를 통해 사회적 맥락과 인간의 존재 조건을 끌어들이며, 그 안에서 우리의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한다. 이로써 정재철 작가의 회화는 단지 미학적 즐거움을 위한 시각적 쾌를 넘어서, 관객의 감정과 사고를 동시에 호출하는 사유의 공간으로 기능하게 된다. 회화는 여기서 철학이 되고, 감각은 곧 사회적 윤리와 도덕적 사고로 확장된다. 따라서 작가가 이야기 하는 《Ground》는 마침표가 아닌, 열린 문장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끝난 대답이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이자 유보된 사유의 상태이다. 인간 존재의 복잡함과 그 모순의 토대이면서 이해와 공존의 가능성을 향한 작가의 사유와 실천의 공간이기도 하다. 정재철 작가는 자신의 회화를 통해 모순은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드러내고, 해부하고, 끝내는 그 모순을 껴안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이 껴안음(이해)의 태도는 바로 우리가 예술에서 기대해야 할 윤리적 실천의 태도이기도 하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