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by 최희순

남편이 떠난 후 당장 아이들과 먹고 살 걱정에 순자는 마음이 급해졌다. 윤기가 살아있을 때는 소 몇 마리를 키우면서 농사도 작게 지었었다. 논을 도지 받아 봄에 모내기도 하고 가을에 추수까지 하며 어릴 때 익힌 벼농사에 대한 노하우로 한 두해 농사도 지었다. 하지만 여자 혼자 농사일로는 돈을 얼른 벌기 힘들어 이 시골 촌구석에서 뭘 해 먹고살아야 하나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하안동에서 이웃이었던 종수 할머니가 근처로 이사 오면서 돼지를 키우고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종수 할머니도 아들을 잃고 손주들만 데리고 사는지라 여러모로 힘들 때 서로 위안이 되었다.

축사를 지어 어미 돼지를 사서 낳은 새끼돼지를 키워 팔면 그래도 돈이 좀 된다는 말에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다. 축사를 지으려면 땅의 용도변경이 필요해서 수차례 면사무소에 들락거렸다. 이사 올 때부터 윤기 내외와 안면이 있던 털보내외가 윤기가 죽고 나자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 털보(그 사람의 외형대로 사람들이 털보라 불렀다)는 그 지역의 오랜 터줏대감인지라 아는 사람 꽤 많았다. 그는 여기저기 도움 될 만한 사람을 소개도 해주고 면사무소 관계자와 만날 때 함께 대동해주기도 했다. 순자는 털보의 처인 정화와도 오가며 잘 지냈던 터라 여러모로 의지할 데가 생겨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혼자서 처음 해보는 양돈업은 잘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수퇘지와 암퇘지의 교미시키는 일부터 약은 무엇을 써야 할지 사료는 어떤 걸 먹여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시작한 지라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무거운 몸을 끌고 나와 삽자루를 들고 돼지 분뇨를 치운다. 모돈(어미돼지)들이 올라간 분만틀 밑으로 분뇨가 한가득 쌓여있다. 새끼들이 들어있는 돈사에 들어가 분뇨를 치우고 있으면 호기심 많은 돼지들이 종아리를 물어댔다. 멍투성이에 여기저기 다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매일 일어나면 도돌이표 생활이다. 그뿐이랴 온몸에 냄새가 베여 씻어도 가시지를 않았다. 외출을 하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코를 막을 때도 있었다. 한참을 숙이고 분뇨를 긁어내다 보니 허리가 너무 아팠다. 잠시 삽을 바닥에 세워 짚고 우두커니 서서 먼 산을 바라보았다. 어스름한 새벽을 밀어내고 밝아오는 아침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먼저 간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고생 안 시킨다고 큰 소리나 치지 말지... '

몸이 고된 건 둘째치고 어린 태영이나 아직 고등학교도 안 간 명훈이, 타지에 끈 떨어진 연처럼 홀로 살고 있는 대훈이까지 생각할수록 순자는 가슴이 미어졌다.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다는 표현이 이런 것이었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새끼들 데리고 콱 죽어버릴까 막막함 끝에 오만 생각에 사로잡혔다.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에 순자는 자신을 좀먹던 어두운 생각들을 떨치다가 문득 종수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 양반은 나보다 더 힘들 텐데... 자식 앞세우고 장애를 가진 손주들과 얼마나 버거울까.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아 더 힘들 텐데 저렇게 잘 버티며 사는데 내가 힘을 내야지! 내 새끼들 내가 잘 거둬야지! 이제 아무도 없고 나랑 내 새끼들만 있는데 힘을 내보자! 그래 보자...'

분뇨로 지저분한 목장갑 손등으로 쓱쓱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고 이를 악물었다. 다시금 허리를 숙이고 삽질을 시작한다. 어슴프레 컴컴하던 새벽하늘이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돈사를 지어놓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때에는 폐수 방류문제로 집 앞의 논주인인 양 씨와도 수차례 언쟁이 오갔다. 양 씨는 순자가 혼자 산다고 깔보고 우습게 여겨 수시로 지나다니며 지적질을 했다. 밤에는 마당에 불도 켜지 못하게 했다. 벼농사가 잘되야 하는데 밤에 불을 켜놓으면 벼농사를 망친다는 이유였다. 또 돈사에서 나오는 오수가 자신의 논농사를 망가뜨린다며 면사무소에 자꾸 신고를 하는 통에 순자는 면사무소에 여러 번 불려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운 마음에 미안하다고 사과도 해보고 내가 내려보내는 게 아니라며 대화도 해보려고 애쓰던 순자는 참다 참다 어느 순간 머릿속에 조여놓은 나사 하나가 풀린 듯 양 씨를 향해 소리 질렀다.

"야! 너 여자 혼자 사니까 내가 우스워보이냐? 어? 내가 오수 방류 안 한다고 분명히 말했지? 당신 논으로 한 방울도 안 들어가는데 왜 자꾸 면사무소에 신고를 해서 사람을 힘들게 해?! 어? 내가 그랬다는 증거를 내놔! 증거를 내놓으라고!"

순자는 머리에서 김이 나는 것 같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소리 지르며 한 발씩 양 씨 앞으로 다가서며 삿대질을 했다. 혼자 사는 여자가 눈을 희번덕 거리며 자신을 위협하듯이 따질 줄 몰랐던지 양 씨가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을 친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 자기가 그렇게 아끼는 논바닥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당신 이리 와! 어? 나랑 담판을 짓게 올라와! 이리 오라고! 어딜 도망가? 빨리 이리 안 와?"

"아이고.... 저.... 저저... 저 여편네가 미... 미쳐.. 미쳤나!!!"

양 씨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쩔쩔맬 줄 알았던 순자의 집힌 눈과 벼락같은 사자후에 놀라 논바닥에서 진흙투성이가 돼도 아랑곳 않고 허겁지겁 도망을 갔다. 자식 같다며 아끼던 벼이삭이 밟히거나 말거나 양팔을 내저으며 넘어지기를 여러 번 반복하더니 서둘러 논을 가로질러 달아났다.

홧김에 소리를 내지르던 순자는 그 모습을 보며 우습기도 하면서 통쾌했다.

'이 이순자 건들면 가만 안 둬!'

아랫입술을 짓 깨물며 슬며시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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