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과 말순

by 최희순

처음 시집와 입에 풀칠하려고 품팔이를 나섰던 시금치 밭에서 만난 정임과 말순은 그야말로 천군만마와 같았다. 태영이가 태어나서 열흘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집 근처 공사장에 함바집을 정임과 함께 열었다. 산후조리를 했어야 하지만 어디 순자에게 그런 여유가 있었을 리가 있겠는가. 정임이 함바집을 한다는 말에 이거라도 하면 당분간 돈벌이 걱정은 없겠다 싶어 같이 하고 싶다고 졸라서 시작하게 되었다.

천막구석에 태영이를 눕혀놓고 아침 장사를 마치고 돌아보면 아기는 천막 안의 열기와 습기로 머리통이 흠뻑 젖어있었다. 배고프다고 울 만도 한데 잠만 잔다고 안쓰럽다며 정임은 아기를 안아 들어 젖을 먹이라며 순자 품에 안겨주었다.

"뭔 애가 울지도 않는다냐? 젖이라도 좀 먹여봐. 세상에... 애가 못 먹어 울 힘도 없는 거 아냐?"

새벽부터 움직였던 터라 고단한 순자가 뒤늦게 아기를 안아 들어 퉁퉁 불은 젖을 먹인다.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시울이 붉어지지만 이내 점심 장사 준비를 할 생각이 밀려들자 마음의 짐은 순식간에 저만치 밀려난다.

연탄장사를 시작했을 때는 어린 태영을 말순이 데리고 목욕탕에 데려가기도 하고 종일 봐주기도 하였다.

"뭔 가시나가 살이 하나도 없다야, 때 좀 밀어줄래도 손목을 비틀면 가죽만 베베 돌아가지 살이 없네. 뭔 애기가 이렇게 말랐다냐! 가시나라고 못쓰것다. 밥 좀 더 멕여야지!"

"엄마, 아줌마가 바나나 우유 사줬어"

하며 손에 든 바나나 우유를 들고 해맑게 웃는 태영을 순자는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태어났을 때 젖을 잘 못 먹고 커서 그런가 살이 잘 오르지 않는 것이 여간 맘에 걸리는 게 아니다. 태영은 낯도 가리지 않고 그렇게 동네 이웃들 품에서 모락모락 잘 커 나갔다.


윤기 때문에 어거지로 화성으로 이사 가긴 했지만 정임은 안산으로 말순은 화성 근교로 이사를 오면서 계속해서 인연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윤기가 죽은 후 순자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었다.

하루에 버스 5대만 다니는 동네에서 순자는 살기 위해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배운 게 없어서 필기시험이 제일 힘들었지만 실기는 무난하게 한 번에 따버렸다. 살면서 자신이 1톤 트럭을 운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순자의 발은 날개를 달았다.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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