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의 작은 누나
윤기의 형제는 누나 둘에 형, 아우 이렇게 다섯이었다.
큰 누나는 어릴 때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간 뒤에 소식이 끊겼다. 작은 누나는 청주로 시집을 가 근근이 살고 있었다. 큰형은 젊어서 술 때문에 간암에 걸려 죽었고 막내 진기와 윤기만 남았던 터다.
투석을 하면서 이식을 부탁할 사람은 진기와 작은 누나뿐이었다.
진기는 검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아 기증이 불가능했고 순자는 마음이 약한 작은 시누이를 설득했다.
"고모, 동생 좀 살려줘요. 이식만 하면 살 수 있대요. 고모 검사 한 번만 받아줘요 네?"
순자는 마주 앉은 시누이의 손을 잡고 사정했다.
"쓸데없는 소릴! 그거 하면 콩팥 하나 떼줘야 하는데 검사는 무슨 노무 검사?!"
담배를 뻑뻑 피우던 시누의 남편이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비쩍 마르고 언제 감았는지도 모를 까치집을 지은 머리를 하고 난닝구와 파자마 바지만 입고서는 마루턱에 앉아 눈을 부라린다.
"저.. 그러지 마시고 제가 검사 비용이랑 병원비랑 모두 다 내어드릴게요.. 사람 한 번만 살려주세요. 네?"
"저기.. 올케... 난 그런 거 무서워서 못해... 미안해 올케"
"고모 애들이 아직 어려요. 대훈아버지 없으면 나 못살아요. 예? 부탁 좀 할게요.. 검사한다고 바로 콩팥 떼는 게 아니에요. 맞는지 안 맞는지만 보는 것도 안될까요?"
"아유.. 미안해. 난 못해"
말간 얼굴을 하고 난색을 표하던 시누이는 못하겠다며 돌아 앉았다.
터덜터덜 시누이의 집에서 걸어 나오는 순자는 애간장이 녹는 듯했다. 이제 어쩐단 말인가. 공여자가 나올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하나. 시누이를 더 설득해야 하는데 나란히 앉은 늙은 여우 같은 시누이의 남편이 요리조리 시누이의 마음을 쥐락펴락해서 참으로 난감했다.
며칠 후 순자에게 전화가 왔다. 시누이였다.
"올케. 내가 올케 가고 나서 잠을 못 잤어. 윤기가 생각이 나서... 일단 검사만 받아볼게. 우리 남편이 나 일 못할까 봐 난리 쳐서 일단 나 검사하는 건 비밀로 해."
"정말요!? 고마워요! 고모. 정말 고마워요!"
자신과는 안 맞을 거라는 시누이의 말과는 다르게 유전인자가 일치해 신장 공여가 가능하다고 결과가 나오자 시누이는 둘째치고 시누이 남편이 펄쩍 뛰었다. 모르게 한다고 했지만 며칠이나 수원까지 왔다 갔는데 모를 리가 있겠는가. 윤기 내외는 과일 바구니를 사서 누나의 집을 찾아갔다.
"저.. 매형. 저 좀 살려주십시오. 이식만 하면 누나가 회복할 동안 일 못해도 먹고살 수 있게 생활비를 좀 드릴게요."
돈 얘기가 나오자 시큰둥하게 담배만 피워대던 매형의 흐리멍덩하던 눈에서 화색이 돈다.
"에헴... 크흠...... 거 내가 돈 때문이 아니라... 그... 우리도 식구들이 많은데 먹고는 살아야지!"
"예.. 제가 이 사람이랑 연탄장사하면서 모아둔 돈으로 이식비용이랑 회복할 때까지 생활비로 좀 드릴 테니 매형이 허락 좀 해주세요. 예?"
"그.. 그럼요.. 저희가 돈 좀 드리려고 안 그래도 생각하고 있었어요."
순자도 피던 담배를 비벼 끄며 얼른 표정을 바꾸는 매형의 모습을 보고 서둘러 말했다.
"사람은 살려야지... 크흠.. 그... 피붙이니까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에흠..."
"예예... 제가 잘하겠습니다. 누나도 매형도 잘 모실게요. 부탁 좀 드릴게요. 저 살고 싶습니다. 매형!"
윤기는 희망이 보이자 누이 부부에게 절이라도 할 기세로 굽신거렸다.
긍정적인 답을 받고 돌아와 희망에 부풀었던 윤기는 며칠이 지나 누나의 전화를 받았다. 얼마를 줄지 들어보고 결정하겠다는 매형의 의사를 전달하는 누나에게 윤기는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부지지 못하면 인정머리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까지 남편에게 휘둘려서 동생 목숨줄을 쥐고 흔드는 누나가 못내 서운했다.
순자와 의논 끝에 수중에 가진 돈에서 병원비를 좀 제하고 삼천만 원을 주겠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알겠다고 하던 매형은 수술 날짜가 다가오자 말을 바꿨다.
오천만 원을 주면 수술하고 그렇지 않으면 누나가 수원 쪽에는 발도 내딛지 못하게 하겠다는 통보였다. 순자는 아무리 사람이 돈 앞에 힘을 못쓴다지만 가족이고 피붙이가 아프다는데 어쩜 저럴 수가 있나 한탄스러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당장 이식해 줄 사람은 윤기의 누나뿐인걸... 돈을 수술하고 주겠다 하니 절대 싫단다. 당장 돈을 부쳐야 한다고 엄포를 놓고 이런저런 말로 사람 애간장을 녹여댔다.
순자는 할 수 없이 돈을 송금해 주었다. 수술 날짜만 기다리며 건강 챙기라고 먹을 것도 잔뜩 보내주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윤기가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그 고생하고 이제 좀 살만 했는데 남편을 데려가버렸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나서 순자는 불현듯 윤기의 누나에게 보낸 돈이 생각이 났다.
시누이에게 아이들과 먹고살아야 하니 보냈던 돈을 다시 달랠 요량으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을 걸었다.
전화도 받지 않고 연락도 없었다. 누나는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돈 오천만 원에 양심을 팔았던 것이다.
얼마뒤에는 전화번호도 바뀌고 이사를 갔는지 집도 비어서 도저히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 늙은 여우 같은 고모부짓이겠지.'
순자는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떠나면서 돈도 잃고 사람도 잃어버린 게 분명했다. 순자는 맨손으로 낯선 지역에 아이들과 덩그러니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