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동 한기수
윤기가 투석을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던 때였다.
대토권으로 분양권이 나와서 아파트 조합원 물건을 하나 갖게 되었다.
윤기 내외가 화성으로 이사를 오고 그 분양권을 팔려던 차에 예전에 같은 동네에 살던 한기수가 사겠노라고 연락이 왔다.
"형님, 그거 제가 살 테니 파십시오!"
"자네가 산다고? 그럼 나야 좋지! 우리가 한두해 본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하고 거래하면 믿을 수 있지... 안 그런가? 하하하"
"그럼요 형님! 언제 안양으로 한번 오시죠!"
윤기내외는 한기수가 있던 안양에 분양권 양도 계약서를 작성하러 올라갔다.
"형님 제가 삼천 삼백에 팔게요. 일단 선금 삼백만 원 받으시고 잔금은 제가 8월에나 돈이 생겨서 나중에 드릴게요."
"어어! 그래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기수 자네가 그렇다는데 내가 편의를 좀 봐줘야지. 하하하"
하지만 순자는 내심 불안했다. 잠시 남편의 옆구리를 찔러서 밖으로 불러내었다.
"여보! 대서방에 가서 서류라도 하나 받읍시다. 돈도 안 받고 계약서 서류부터 사인해 줬으니 불안해서 안 되겠어. 며칟날 돈 준다는 서류라도 하나 만들어 놓자고!"
아이처럼 발을 동동거릴 만큼 불안했던 순자에게 윤기는 커다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쓰읍! 쯧...! 쓸데없는 소리! 한기수가 나를 속이고 잘못하면 하안동 살던 사람들이 다 알고, 내가 잘못해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아! 기수가 그거 떼먹을 사람이야? 사람 창피하게 좀 하지 말고 조용히 해!"
윤기는 순자에게 전에 안 부리던 성질을 부렸다. 순자는 큰 눈을 부라리며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버럭 소리치는 남편이 답답했지만 남편의 불같은 성질을 이길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그날 삼백만 원을 들고 내려와 이불 장롱 안에 깊숙이 넣어두고 잔금 받을 날인 8월 15일만 기다렸다.
돈을 주기로 한 8월 15일 아침에 윤기가 병원에서 쓰러져 사망하자 한기수는 말을 바꿨다. 한 동네 알던 사람들에게 이미 삼천만 원을 현금으로 줬다고 소문을 냈다. 순자는 가슴이 턱 막혔다. 그렇게 서류하나 만들자고 해도 싫다더니 죽어도 하필 돈 받는 날 윤기가 죽었다.
순자는 장롱 속에 깊숙이 넣어두었던 삼백만 원으로 윤기의 장례를 치렀다. 돈을 현금으로 줬다는 한기수의 말에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장례를 치른 후에 찾아가 펄펄 뛰며 난리를 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멸시와 경멸이었다. 돈이 욕심나서 잔금을 받았는데도 안 받은 척한다며 욕심 많은 여편네로 치부했다. 도움 받을 곳이 없었다. 그 돈만 있으면 아이들하고 살면서 뭐라도 하겠는데 저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돈을 떼였으니 순자는 몇 날 며칠을 앓아누웠다. 억울함이 가슴에 한이 되어 못 박혔다
억울한 윤기가 울기라도 하는 것 마냥 출상하는 날에는 새벽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사정사정해서 누나에게 신장 이식을 받기로 하고 기대에 차올라 앞으로 살 날을 그리며 희망에 부풀었던 남편은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순자의 부친인 갑수가 올라와 손수 사위의 장례를 주도하였다. 상여를 이끄는 상여꾼이 흔드는 종소리와 곡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울렸다. 내린 비에 온통 진흙탕이 된 화성의 한 공동묘지에 윤기는 그렇게 묻혔다.
윤기를 땅에 묻고 집에 돌아온 순자는 홀로 외딴곳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철없는 아이들과 순자만 남았다. 이사만 오면 잘해주고 걱정 없이 편하게 살게 해 주겠노라 약속한 남편은 2년을 다 못 채우고 그렇게 혼자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