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2)

큰아들 대훈

by 최희순

이튿날 윤기는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떼고 앰뷸런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꼬박 하루가 지나서야 집에 온 것이다. 내내 집에서 아빠를 기다리던 태영은 아빠가 돌아가신 것으로 적잖게 충격을 받았는지 장례를 치르는 내내 울지도 않았다. 태영이는 아버지의 입관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거짓말이라 생각되었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40분을 꼬박 걸어야 하는 학교에서 전화하면 못 이기는 척 50cc 오토바이를 타고 얼른 와서 딸내미를 태워가던 딸바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게 거짓말이고 꿈이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서울에 외삼촌 순철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던 대훈은 얼마 전에 셋방을 얻어 인천의 고등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순자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하려 했지만 대훈은 연락을 받지 않았다. 셋방의 보증금을 빼내어 다른데 쓴 게 들통이 났을까 봐 잠수를 탄 것이다.

순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때 금례가 순자의 팔을 잡고 가만히 속삭였다.

"대훈이 애비한테 가서 대훈이 좀 찾아오라고 그래라! 옛날에 자식 찾으려면 이렇게들 하던데,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해보거라."

순자는 긴가민가 하면서도 안방에 윤기의 시신을 가린 병풍뒤로 갔다.

"대훈 아부지! 대훈이 좀 찾아와. 당신 아들 얼굴은 보고 가야지! 응?"








대훈이는 며칠 째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잠을 설쳤다. 눈만 감으면 시커멓게 무엇인지 모르는 게 자신을 덮치기도 하고 목을 조르기도 했다.

'아... 집에 뭔 일 있나?'

지은 죄가 있어서 전화도 못하고 답답해할 때 친구 호은이 외출에서 돌아오자 전화 한 통 부탁했다.

"호은아.. 너 모른척하고 우리 집에 전화 좀 해서 나 있냐고 물어봐바.. 집에 뭔 일 있나 기분이 이상하다"

"어? 그래? 번호 줘바.. 이런 건 또 내가 잘하지 하하"


손님맞이로 한참 정신없을 때 집 전화벨이 울린다. 순자는 대훈이가 전화했나 싶어 서둘러 받았다.

"여보세요?"

"아..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 대훈이 학교 같이 다니는 호은이에요. 잘 지내셨...."

"어!!! 호은아!!! 호은아!!! 아줌마 얘기 잘 들어! 응? 대훈이 아버지 돌아가셨다. 내일이 출상인데 대훈이가 연락이 안 되는구나. 너는 어딨는지 알지? 응? 네가 대훈이 찾아서 택시 태워서 집으로 보내거라. 택시비는 내가 여기 오면 준다고 하고 태워서 보내! 알았지?"

"... 에에? 네네..."


순자의 전화를 받고 놀란 호은은 대훈에게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알렸다.

"야.. 너희 아부지 돌아가셨대! 너 빨리 집으로 가라!"

"이 개새끼가 가만히 있는 울 아부지는 왜 죽여! 너 울 엄마랑 짜고 그러는 거지?!"

"내가? 야 인마, 못 믿겠으면 네가 전화해 보면 되잖아!"

대훈은 한참을 망설이다 공중전화에서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에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린 대훈은 호은의 자취방으로 돌아와 호은의 멱살을 잡아챘다.

"야 이 새끼야! 내가 지금 전화했는데 울 아부지 전화받으시던데 뭔 개소리여! 죽고 싶냐?!"

"어? 어? 그럴 리가 없는데 네 어머니 목소리 심각하셨다고!"

대훈이 자릴 박차고 나가자 호은은 대훈의 엄마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저 호은인데요... 대훈이가 아까 전화했는데 아부지가 받으셨다고 난리난리 쳐요. 거짓말하신 거지요?"

"으응? 아휴... 호은아.. 그거 대훈이 작은 아버지야. 지금 집에서 장례 치르느라 모두 와계신다. 제발 부탁이다! 대훈이 좀 보내다오. 내일 되면 아버지 얼굴도 못 보는데 관뚜껑 닫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 하지 않겠니... 제발 좀 보내다오! 흐흑..."

호은은 어머니의 울음 섞인 호소에 심각함을 알고 대훈을 찾아 나섰다.

난닝구 쪼가리 입고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대훈을 낚아채서 자신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입혔다.

"아.. 이 새끼가 돌았나 왜 이래!"

"대훈아! 전화받으신 남자분 네 작은 아버지래. 너 아버지 얼굴 보려면 지금 와야 한다고 어머님이 그러셨어. 내일 출상이라고! 씨발! 이 새끼야! 말 좀 들어 쳐 먹어!"

"..................!!!"

멍해져 있는 대훈을 끌고 도로가로 나와 지나가던 택시를 잡았다.

"아저씨 도착하면 거기 계신 분이 돈 들고 나와 계실 거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절대 중간에 다른 데서 세우시면 안 돼요!"

호은은 택시 문을 탁 닫고는 서둘러 출발하는 택시 뒤에 멍하니 서있었다. 대훈의 난닝구를 다시 입고는 대훈의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저 호은입니다. 대훈이 지금 보냈어요.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안에 도착할 거 같아요!"

"그래? 그래! 고맙다! 고마워! 호은아!"


택시에서 내린 대훈은 넋을 잃었다. 집 앞마당에는 천막이 쳐져있고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천막 아래 상을 펴고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길가에 나와 있던 순자는 택시비를 주고는 안도감에 눈물이 그득 차올랐다. 울먹거리며 대훈의 등짝을 때리며 안으로 데려갔다.

"이놈의 새끼야! 왜 연락을 안 받아? 너 하마터면 아부지 얼굴도 못 볼뻔했잖아! 어서 들어가!"

대훈은 아버지의 시신을 보고 힘이 풀린 듯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대로 엎드려 흐느꼈다. 무섭지만 기둥 같았던 아버지가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모습에 그동안에 잘못한 일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가슴을 짓눌러 울지 않고는 배겨 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순자와 가족들이 그리고 그곳에 있던 조문객들이 조용히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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