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전증

윤기의 후회

by 최희순

순자가 꿈꿨던 평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윤기의 몸상태가 이상했다. 얼굴과 손발이 퉁퉁 붓기 시작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지 헐떡였다.

주변사람들이 어딘가 아파 보인다고 빨리 병원에 데려가라고 성화였다. 순자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안 간다는 윤기를 억지로 등 떠밀어 시내 병원에 데려갔다.

"신장이상이 의심됩니다 정밀검사하려면 큰 병원에 가보시는 게 낫겠어요. 소견서 써드릴 테니 미루지 말고 바로 가보세요."

내과에서 혈액 검사를 해보더니 소견서를 써주며 상급 병원으로 전원 시켜주었다

윤기는 수원의 큰 종합병원으로 옮겨 검사를 받았다.

"그동안 계속 몸에 건강이상 징후가 있었을 텐데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우리 몸엔 신장이 두 갠데 최윤기 씨는 그 두 개가 모두 기능을 상실해서 몸속에 수분이나 노폐물을 걸러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몸이 붓고 호흡이 힘드셨던 겁니다. 일단 오늘 바로 투석을 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투석 이외의 방법은 신장이식뿐입니다. 가족이나 형제 중에 혈액형이 같고 기증조건이 맞으면 신장이식이 가능하고 가족 중에 없으면 기증자의 신장을 기다리셔야 합니다."


말기 신부전증이었다.

신장 두 개가 모두 망가져 투석을 해야 하고 서둘리 장기 이식을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나니 순자도 윤기도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길고 길었던 가난을 버텨내고 힘든 시기를 지나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는데 불행이 닥쳤다. 순자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미우나 고우나 백년해로하겠다고 마음먹은 내 남편에게 큰 병이 생겼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직 학교 다니는 자식이 셋이다. 밀려드는 불안한 생각에 눈앞이 깜깜했다.

'일단 나부터 검사하고 안 맞는다고 하면 도련님이랑 고모한테도 부탁해 봐야지. 어떻게든 살려야지. 그래야지 '

진료실을 나올 때부터 말이 없는 윤기를 바라보며 순자는 다짐했다.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참 멀게 느껴졌다. 큰아들 대훈은 태권도로 체고에 진학하여 광명에 있는 순자의 바로 밑에 동생 순철의 집에 더부살이 중이었다.

작은아들 명훈도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이고 그렇게 이뻐죽는 딸내미도 이제 겨우 4학년이다. 이 아이들을 두고 어찌 죽을까. 윤기는 그동안 퍼마신 술과 담배가 후회스러웠다. 이제 고생 좀 덜 시키려고 우겨서 멀리 이사까지 왔는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마 후 투석을 하기 위한 혈관루 시술을 위해 입원을 했다. (혈관루는 투석 시 혈액을 체외로 뽑아내고 걸러진 혈액을 다시 몸속으로 주입하는 통로를 말한다.)

엄마와 아빠가 모두 병원에 있는 동안에 태영은 작은 오빠 명훈과 할머니와 함께 집에서 기다렸다. 주말이 되어 학교에 안 가도 되자 순자는 태영을 보고 싶어 하는 윤기를 위해 아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문을 열자 창가에 좁은 침대에 윤기가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다.

"아빠!"

"아이구! 우리 딸 잘 있었어?"

윤기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품에 안긴 태영은 제 아비가 가리키는 손등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진동이 울렸다.

"이상해. 웅웅 거려!"

"응 이게 피 걸러주는 걸 도와주는 기계장치야!"

"아빠 안 아팠어? 제 더 병원에 있어야 해?"

"괜찮아. 손등에 요거 심느라고 그랬지. 며칠 지나면 갈 수 있어! 태영이 안 울고 잘 있을 수 있지?"

"응! 나 혼자 잘 있어. 그리고 할머니두 계신걸... 작은 오빠는 맨날 놀러 나가고 집에 없지만 나는 원래 혼자서도 잘 있잖아. 아빠!"

"그래.. 기특하다. 조금만 참아. 의사 선생님이 아빠 몇 밤만 자면 갈 수 있다고 했어."

"정말?"

"그럼! 정말이지."

품에 딸아이를 꼭 안은 윤기는 병문안을 왔던 손님들이 두고 간 복숭아 통조림을 꺼내어 통조림따개로 솜씨 좋게 캔을 오리듯 빙 둘러 땄다.

뚜껑을 열어젖히자 달큰한 향이 병실 안에 퍼졌다. 윤기는 서랍에서 꺼낸 숟가락으로 먹기 좋게 잘라 태영의 입에 넣어 주었다.

태영은 이날 황도를 처음 먹어봤다. 한입 먹더니 눈이 동그래져서 아기새처럼 연신 입을 벌렸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황도가 입안에서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태영은 어른이 되어서도 황도만 보면 윤기와의 달콤한 한 때가 떠올랐다.




집에 태영이를 보낼 때 순자는 수원 남문시장에서 태영의 옷과 신발을 사서 손에 쥐어주며 버스를 태웠다.

"태영아! 26번 버스가 우리 집 앞까지 가는 거 알지? 기사님한테 말해줄 테니 잘 앉아있다가 기사 아저씨가 내리라고 하면 내려! 알았지?"

".... 응"

태영은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이상했다. 열한 살이 되었지만 아직도 엄마와 헤어지는 건 쉽지 않았다. 버스가 오자 운전기사에게 부탁을 하고는 기사 바로 옆 문 앞에 아이를 앉혔다.

버스 밖에서 손을 흔드는 순자의 모습에 태영은 그만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하지만 어쩐지 엄마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렸다. 엄마가 저 밖에 있는데 저 혼자 가야 하는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속상해할 걸 알지만 생각과 다르게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이를 악물어도 불거진 눈시울과 서러운 마음을 달랠 수 없어 소리 죽여 울 수밖에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엄마가 볼까 봐 서둘러 양손으로 닦아냈지만 금세 또 흘렀다.

버스 밖에서 손을 흔들던 순자도 마음이 미어지는 것은 마찬가지. 씩씩하게 갈 줄 알았던 아이가 울자 순자도 눈물이 터졌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병간호에 살림에 정신없이 시간을 쪼개 살면서 이 고비도 이겨내려고 독하게 마음먹은 순자였다. 하지만 우는 딸아이 앞에서는 둑처럼 쌓아 참아냈던 힘든 마음이 허물어져 버렸다. 서로 눈물을 훔치며 버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말없는 끄덕임과 함께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태영은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태영아! 아까 왜 그렇게 울었어! 엄마 속상하게..."

"으응... 그게.. 그냥 엄마랑 헤어지는 게 슬퍼서..."

"엄마 금방 갈 건데 뭘... 울지 말고 잘 있어! 알았지? 우리 딸?"

"으... 응... 알았어. 걱정하지 마"

대답하면서도 목이 메는지 자꾸 힘이 빠져 말끝이 흐릿하다.

"그래... 할머니랑 문 잘 잠그고 자고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작은아버지 집에 전화하던지 엄마한테 전화해! 병원 전화번호 적어줬잖아? 그치?갖고 있어?"

"응. 여기 잘 가지고 있어. 엄마 빨리 와!"

"응. 그래..."

딸과의 전화 통화를 마친 순자는 윤기의 막냇동생 진기의 처에게 전화를 건다.

"동서, 어.. 나야. 태영이를 집에 두고 온 게 걱정돼서 혹시 한 번씩 좀 들여다봐줄 수 있을까? 어머니가 계셔도 학교 준비물 같은 건 못 챙겨주실 거 같아서..."

"아... 알았어요.. 형님! 걱정 마세요."


진기내외는 윤기가 이사 오면서 함께 내려왔다. 근거리에 집을 얻어 진기의 처와 세 아이가 한 동네에 살게 되었다. 순자는 처음에는 몰랐으나 이런 일이 있고 나니 그래도 친척이 근처에 살아 다행이구나 싶어 안도했다.

총각 때 그렇게 경찰서에 들락거리면서 순자 속을 썩이더니 이제야 빚을 갚아주나 보다 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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