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발이보다는 가난한 게 낫지
열일곱 살 혼기가 꽉 차오르자 매파가 혼처를 들고 와 묻는다.
"아유. 이 사람은 시방 사는 것도 넉넉하고 밥 굶을 걱정은 읍써. 시부모 될 사람들도 점잖허니 어찌나 좋은지 몰러어. 근디... 저... 그... "
도로록 눈을 굴리며 순자와 금례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아낀다. 무슨 일인지 한참이나 뜸을 들이더니 드디어 입을 뗀다.
"그... 다... 단지 흠이라면 다릴 쪼깨 저는 건디... 아유, 그게 뭐 큰 흠은 아니여... 심하지도 않아. 쪼깨! 아주 쪼깨 절어! 긍게 아가씨가 가서 잘 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돼야"
매파는 손사래를 치며 다른 좋은 조건을 생각하라며 얼른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순자는 가만히 듣더니
"다릴 절어요? 아... 그래도 사지 멀쩡한 사람이 좋은데 다른 사람은 읍써요?"
"으응? 아... 있어. 있는디... 아이구 참... 쩝... 거시기 최가라고 충청도 사람인디 그 집의 넷째 아들이 하나 있긴 한데 너무 가난혀. 딸린 식구들도 많고! 그리 시집가면 고생혀. 아유... 내 그럴까 봐 말도 안 꺼낸 것인디..."
금례 역시 다리를 저는 사윗감이 못마땅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다고 딸을 가난뱅이한테 보낼까.
'그래도 절름발이 보단 사지멀쩡한 사람이 낫지 않것어?'
순자는 생각했다.
"엄마, 나 이 최씨네 사람하고 할래!"
"너 후회 안하것써? 그 사람 사는 곳은 여그서 거리도 멀고 가난하다지 않허냐? 식구가 많으면 그맹키로 사는 게 더 힘들 것인디, 잘 생각혀"
"아이... 허지만 절름발이는 싫은디 어쩌것어."
순자가 하겠다고 맘을 먹자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중매쟁이가 이어준 이는 충청도 출신인 최가네 5남매 중에 넷째 아들 윤기였다. 키는 순자보다 조금 작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다부져 보였다. 쌍꺼풀이 진하게 있는 큰 두 눈은 부리부리했다. 중매쟁이가 가난하다고 하더니 결혼하는 날 입고 온 옷도 변변치 않아서 금례는 서둘러 읍내에서 옷 한 벌을 지어다 입혔다. 그 와중에도 서슬 퍼런 장인어른 앞이어도 기죽지 않고 당당했다. 사람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리는 모습도 순자의 마음에 들었다. 생판 처음 보는 남의 동네에 와서 이 사람 저 사람 질문공세에 시달리면 위축 될 법도 한데 서글서글한 얼굴로 대답도 잘했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한테도 밀리지 않고 소신 있는 게 맘에 들어서 이 사람을 따라가면 지긋지긋한 농사일에서 벗어나 행복하리라 믿었다.
전통혼례복을 입고 집 앞마당에서 혼례를 치르는데 신랑이 신부보다 키가 작아 사과궤짝을 놓고 올라가 혼례사진을 찍었다. 순자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새로운 시작에 가슴이 설렜다.
혼례를 치르고 며칠 후 윤기의 집으로 함께 떠나던 날이었다.
금례는 먼 곳으로 떠나는 딸에게 쌀가마와 비상금을 쥐어주고는 말했다.
"인쟈 죽어도 그 집 귀신이고 살아도 그 집 귀신이니까 가서 잘혀. 너만 잘하믄 돼. 뭔 일 있거들랑 전보 치고!"
"응.. 엄마"
대답하는 순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막상 떠나려니 이제 엄마도 아부지도 못 본다니 마음이 이상했다. 그렇게 힘들었던 농사일도 이제 안 해도 되는데 왜 눈물이 날까. 굳건했던 아부지가 멀찌감치 서서 순자를 물끄러미 보고 계신다. 눈이 마주치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문 입에 더욱 힘을 주신다. 말씀은 안 하셔도 순자는 어림짐작으로 아부지의 애틋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동생들도 조르륵 나와 순자와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옆동네도 아니고 기차로 종일 올라가야 하는 거리라 이제 한동안은 가족들 얼굴을 보지 못하겠구나 싶어 두 눈에 가득 담으려 애를 썼다.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드는 부모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순자는 새로운 세상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앞으로는 모든 게 순조로우리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