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그녀, 이나래- 13화
"나래, 혹시 소개팅 같은 거… 관심 있어?"
같은 과의 오오쿠미 선배가 갑작스레 건넨 말에,
나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오쿠미는 나래보다 여덟 살 많은 서른 살의 직장인이었다.
삿포로에서 후카가와까지 매일 특급 기차를 타고 통학하는 그녀였다.
"소개팅이요? 에이… 저는 아직은 좀…"
자신이 없어서 말끝을 흐리는 나래를 보며,
오오쿠미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게 사실은 내가 아끼는 후배한테
나래 얘길 했더니 한번 만나보고 싶대.
한국 유학생이라고 미리 얘기도 다 해놓은 상태야.
이름은 타카하시, 나래보다 한 살 어린 걸로 알고 있어.
그리고… 타카하시는 키도 크고, 진짜 잘생겼어!
그런데 워낙 낯가림이 심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라서 여자 사귀는 걸 어렵게 생각하더라고."
소개팅.
한국에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낯선 단어였다.
나래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짝사랑해 온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를 보는 것만으로 나래는 가슴이 벅차서 소개팅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냥 좋은 사람 한번 만난다고 생각해 봐.
좋은 사람 알아두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잖아.
나도 그날 남자친구 만나니까 넷이서 술 한잔 하면 되겠다~"
망설이던 나래에게 오오쿠미가 재촉하듯 웃으며 말했다.
같이 술 한잔하자라는 말이 나래의 마음을 가볍게 했다.
"그럼 제가… 내일까지 답 드릴게요."
"응 그래! 타카하시가 쉬는 날이 3일 뒤니까 내일까지는 꼭 답을 줘."
나래는 오오쿠미와 인사를 나누고 학교 뒤에 세워둔 자전거에 올라탔다.
소개팅이라…
와!!! 가슴까지 설레는 단어였다.
자전거의 페달을 밟자 시원한 바람이 나래의 머리카락과 가슴과 손과 다리를 통과해 지나갔다. 나래는 얼굴에 점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아니지 아니지, 이나래!!!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생활비가 2만 엔이나 부족하잖아!'
현실은 여전히 냉정했다.
수영장 아르바이트만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학교 도움 없이 직접 아르바이트를 구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래는 학교에서 선물 받은 자전거를 타고 후카가와 거리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햇살이 부서지는 6월 중순.
한국과는 전혀 다른, 선선하고 맑은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대설산 꼭대기는 아직도 눈으로 덮여 있었고, 마을은 늦봄과 초여름 사이 어딘가에서 느릿하게 숨 쉬고 있었다.
이 조용한 도시가 점점 나래의 고향처럼 느껴졌다.
가로수 그늘 아래를 지나던 중, 눈에 띈 자그마한 이자카야 간판.
'쯔보하찌'라는 이름 아래, 손글씨로 써 내려간 구인 안내문이 조용히 붙어 있었다.
"아르바이트 학생 모집! 타쿠쇼쿠 대학생 환영"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들어가 볼까? 아냐, 아냐...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일본어는 웬만큼 하지만 손님들 주문을 문제없이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지…'
자전거 핸들을 꼭 쥐고 서성이던 나래 앞에, 갑자기 문이 드르륵 열렸다.
정갈하게 가르마를 탄 중년의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흰 머리칼 사이로 섞인 검은 머리, 탄탄한 어깨와 강직한 눈빛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왜 남의 가게 앞에 그렇게 서 있나?"
잠시 멈칫하던 나래를 향해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냥 지나갈까? 아니지… 나에게 말을 걸어주셨으니, 안 되더라도 말은 해볼 수 있잖아.'
나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나래라고 합니다. 아르바이트 구인 안내문을 보고…
혹시 면접이 가능할까 해서요."
뜻밖에도, 일본어가 술술 나왔다.
"'이'라는 성이면 일본 사람은 아니겠군.
마침 우리 가게에도 타쿠쇼쿠 대학생이 두 명 아르바이트하고 있어.
유학생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 있지. 일단, 안으로 들어와 보게나."
가게 안은 숯불 향기와 쇼유 냄새가 스며든 따뜻한 공기로 가득했다.
카운터 옆에 놓인 샐러드 작업대, 숯불구이 코너, 깔끔하게 진열된 사케 병들,
닭과 오징어를 튀기는 튀김 코너까지....
처음 마주한 이자카야의 낯선 풍경을 나래는 천천히, 조심스레 눈에 담아두었다.
그녀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장사 준비를 하던 모든 시선이 나래를 향해 돌아왔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하지만 어쩌면,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이
나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엔 자꾸만 오오쿠미 선배의 말이 맴돌았다.
타카하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나래는 왠지 모를 설렘을 느꼈다.
�작가의 말 �️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목디스크 증상이 생각보다 오래가고 있어요.
허리 디스크도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목디스크는 또 다른 차원의 불편함이네요.
손끝까지 저릿저릿하고, 견갑골은 하루 종일 찌릿찌릿.
월·수·금, 부지런히 연재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몸이 아프면 마음처럼 안 되는 날들이 더 많더라고요.
그래도 꾸준히,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고 있어요.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여러분 덕분에 힘을 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