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과 초6병 사이에서, 엄마는 자란다

딸의 가방을 빨다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by 파랑몽상


사춘기 딸의 가방 속에서 발견한 것들


중2 딸의 학원 가방이 너무 지저분해서, 정말 오랜만에 세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가방 속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나는 한동안 말문을 잃고 말았다.

녹아버린 사탕, 더위에 형체를 잃고 가방에 들러붙어버린 캐러멜,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과자 부스러기들…. 이게 정말 사람 가방이 맞나 싶었다.

"야! 너 너무 심한 거 아냐? 이게 사람 가방이야?"

참다못한 나는 결국 소리를 질렀고, 딸은 시큰둥하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빨지 말고 새 가방 하나 사주는 것도 방법이야."

세상에. 우리 집에 돈이 남아돌지, 화수분이라도 있는 줄 아는 걸까?


가방의 가장 뒤쪽 포켓을 여는 순간, 나는 아주 낯선 감정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안에는 친구에게 받은 생일 카드들이 고이 들어 있었고, 나는 어떤 예감에 휩싸인 채 조심스럽게 편지를 펼쳤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내 딸의 나이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로 가득했다.

성적인 농담들, 어른들도 쉽게 입에 올리지 않을 표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적혀 있었다.

평소에 부모의 뽀뽀 장면만 봐도 "더럽다"며 기겁하던 그 딸이 이런 편지를 꼭꼭 숨겨서 다녔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룻밤을 온전히 그 아이의 입장이 되어보려 했다.

'요즘 아이들의 농담이 저런 걸까?'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일뿐일까?' '아무 의미 없는 말장난이었을까?'

온종일 곱씹고 또 곱씹었지만, 결국 이성도 논리도 이 복잡한 감정을 수습하지 못했다.

그래서 딸에게 직접 물었다.

"○○아, 내가 진짜 이해가 안 돼서 묻는 거야. 그러니깐 솔직히 말해줘."

딸은 내 목소리 톤만으로도 이미 알아챈 듯했다. 엄마가 지금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걸.

"무슨 일인데…?"

"네 가방 빨다가, 친구한테 받은 편지 봤어."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뻔했다.

"엄마가 그걸 왜 봐!"

딸은 평소 나와 편지를 스스럼없이 공유하는 아이였다.

숨기거나 감추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왜… 왜 그 편지 내용은 그런 단어들로 가득한 거야? 왜?? 너.. 야한 말 싫어한다면서?"

그 순간부터 그녀는 노발대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 역시 물러설 수 없었다.

감정이 점점 격해지자, 나는 이를 악물고 조용히 말했다.

"엄마는 지금 너무 화가 나서, 더 말하면 너한테 상처 줄까 봐 걱정돼.

오늘은 여기까지 말할게. 그리고 네가 지금 어떤 사람과 어울리고 있는지, '초록은 동색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한번 생각해 봐."


이날 이후로 계속 같은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사춘기 딸의 성장, 내가 엄마로 어디까지 이해해줘야 하는 걸까?

아무리 개방된 시대라고 해도, 내 아이에게는 아직 그런 이야기들이 멀리 있을 거라 믿고 있었던 나인데...

그날 이후로 적잖은 혼란을 겪었다.


어쩌면 나는 아직 요즘 시대의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내 딸은 이미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길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작가의 말 | 파랑몽상입니다.

『홋카이도 그녀, 이나래』를 연재하면서,
요즘 제 삶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바로 사춘기 중2 딸과, 사춘기 입구에 선 초6 아들과의 하루하루를
이곳 브런치에 함께 기록해보고자 합니다.

소설만 써오다 처음으로 수필을 쓰려니
낯설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네요.
마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느낌이랄까요.

이곳에서 저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분들과
감정과, 고민과, 유쾌한 일상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안드레아, 낯선 계절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