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그녀, 이나래 -22화
소에다는 나래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에서 어떤 말이라도 흘러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녀가 무언가 말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나래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술이 깨면서 밀려온 추위가 조금 전보다 더 매서웠다.
'옷을 좀 더 두껍게 입고 올 걸.'
그런 생각과 함께 팔짱을 꼭 끌어안았다.
나래를 본 소에다는 조용히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 위에 덮어주었다.
그는 한순간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춥지?"
소에다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나래는 반쯤 감긴 눈으로 그에게 작게 웃어 보였다.
"오늘은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갑자기 코까지 맹맹해졌어요."
그 말과 함께 나래는 천천히 소에다 쪽으로 몸을 기대었다.
"선생님이 아까 하신 질문이 뭐였죠? 그저 선생님을 오빠로만 느껴지냐고요? 그럼... 제가 반대로 물을게요,
선생님은 저를 여자로 보세요?"
뜻밖의 반문에 소에다는 잠시 멈칫했다.
자신의 감정은 이미 충분히 전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에겐 아직도 미지수였던 모양이다.
그는 마치 시험지를 앞에 둔 학생처럼 긴장한 얼굴로 나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랜 시간 간직해 온 감정은 나래의 한마디에 서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걸 정말 몰랐단 말이야? 내가 왜 아무런 감정 없는 사람을 간호해 주고 죽을 끓여주고, 매주 수요일마다 저녁을 같이 먹겠어?"
그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조심스레 나래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전... 선생님이 원래 그런 분인 줄 알았어요. 저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다정한 사람이고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선생님에게는 미나코가 있잖아요, 미나코가 선생님 꽤 긴 시간 동안 짝사랑 하고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나래는 말끝을 흐리며 그의 얼굴을 조심스레 바라보았다.
'왜 이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다정한 걸까. 어디까지가 배려이고, 어디서부터가 진심일까.
그가 나를 여자로 좋아한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평범한 외국인 유학생일 뿐인데.
그는 의사이고, 일본 사회에서도 신뢰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세련된 외모, 부드러운 말투, 따뜻한 성격까지. 부족한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나를 왜?'
나래는 스스로에게 계속 의문을 가졌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소에다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 눈빛에는 말로는 전하지 못한 감정 덩어리가 담겨 있었다.
겨우 입이 떨어졌다. 주저하는 문장들이 하나씩 흘러나왔다.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편하고, 안정감이 들어요. 그런데 그게... 사랑일까요?
저는 아직 스물한 살이고, 학생이고, 게다가 한국 사람이에요.
선생님은 일본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사람이잖아요."
소에다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마치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를 조용히 삼키듯, 끝까지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다정한 여백 같았다
"혹시 제가 외국에서 와서, 혼자라서... 측은해서 그런 거라면, 그런 감정은 금방 사라질 수도 있잖아요."
그 순간, 소에다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나래가 처음부터 이상하게 좋았어."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그런 사람이 있잖아. 그냥 눈에 들어오고, 웃는 걸 보면 나도 같이 웃게 되는 사람.
그 사람의 밝음이 좋고, 행복했으면 좋겠고, 함께 있고 싶고, 자꾸 생각나고, 걱정되는 사람.
내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 사람"
소에다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나에게는... 그게 너야, 이나래."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내가 조급하게 굴지 않겠다고 한 건, 너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널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네가 나를 남자로서 생각해 줄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거야."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나래가 오해하지 않길 바라는 듯 덧붙였다.
"그리고 혹시 미나코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면, 확실히 해두고 싶어.
그녀는 중앙 병원장님의 처제이자, 노인 복지원의 부원장일 뿐이야. 오래 알고 지낸 동료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바람이 스쳤다.
나래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고, 그 바람결처럼 마음 안쪽에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했다.
소에다의 말은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나래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외투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는 것, 그 온기가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나래는 무의식 중에 외투를 더 깊숙이 끌어안았다.
소에다 특유의 은은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때 나래가 연달아 두세 번 재채기를 했다.
"나래, 이러다가 감기 걸리겠네..."
소에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나래. 더 있다간 진짜 감기 들겠어.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녀의 어깨를 다정히 감싸주었다.
나래는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그의 뒷모습이 멀어질수록, 마음은 더 크게 일렁였다.
내가... 지금 뭘 느끼고 있는 거지?
이미 술은 다 깼고, 나래의 가슴에 고백의 여운과 차가운 밤공기만이 남아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어깨 위 외투의 온기,
그리고 그 온기가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는 감정도 함께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느렸다. 마치 이 밤이, 이 감정이 쉽게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처음엔 월, 수, 금—일주일에 세 번 소설을 연재하는 걸 목표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방학이라는 현실적인 이슈로, 요즘은
월·수·금은 블로그, 화·목은 브런치에 나눠 연재하고 있어요.
소설을 쓴다는 건 저에게 단순한 취미 이상,
자아실현의 한 방식입니다.
하루에 세 시간씩 꼬박 시간을 들여 쓰는 이 글들이
아직은 미숙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는 기다림의 가치가 있는 이야기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