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그녀, 이나래 -25화
숙취란 걸 처음 겪는 아침이었다.
나래는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간신히 눈을 떴다.
어젯밤의 기억이 물안개처럼 흩어졌다.
달콤한 칵테일을 마시며 어색 공기가 흘렀던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 어색한 공기를 만들어낸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는 것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하지만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안드레아가 데려다주었겠지만, 스스로 걸어온 기억은 없었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위 안쪽에서 매스꺼움이 밀려왔다.
나래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이게... 숙취라는 거구나. 변기를 붙잡고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게 정말 내가 맞나"
믿기지 않았다
침대로 돌아갈 기운조차 없어 화장실 바닥에 몸을 뉘었다.
다섯 잔 남짓한 칵테일에 정신까지 잃을 줄은 몰랐다.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안드레아? 나 지금… 내 정신이 아니야.”
나래는 비틀거리며 겨우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밖에는 뜻밖에도 소에다가 서 있었다.
순간, 나래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
‘어? 이게 뭐지? 왜 이 시간에 선생님이…?’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 속 얼굴을 확인했다. 창백한 피부, 부스스한 머리.
“선생님? 죄송해요. 지금 상태가…”
문에 대고 조심스럽게 말하며 벽에 몸을 기대었다. 토할 것 같은 속, 흐려지는 시야.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소에다는 나래의 상태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문 열어줘. 지금 숙취가 심할 텐데… 지금 관리 안 하면 오후 아르바이트도 못 나가.”
나래는 거울을 한 번 더 보고, 부스스한 머리를 겨우 매만졌다.
딸각.
문이 열리자 소에다가 나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은 빨갛게 충혈되고 얼굴은 하얗다 못해 창백했다.
"괜찮은 거야?"
소에다의 다정한 목소리에 나래는 생각지도 못하게 눈물이 났다. 그의 걱정 어린 말 한마디가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소에다는 나래의 이마에 손을 대어보았다.
"열은 없으니까 다행이야. 그냥 숙취인 것 같아."
순간 나래는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거렸다. 그런 나래를 소에다가 재빨리 안아 올렸다.
"선생님, 뭐 하시는 거예요?"
말로는 그렇게 했지만, 항의할 힘도 없어서 나래는 그대로 소에다의 품에 몸을 맡겼다.
소에다는 조심스럽게 나래를 침대에 눕혔다.
"이럴 줄 알았어. 어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칵테일을 많이 마시더라. 우선 이 숙취 해소제 먼저 마셔"
그가 꺼낸 해소제에서 풍기는 진한 냄새에 나래는 또다시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미 토할 것도 없어서 희멀건 위액만 올라왔다. 속은 뒤틀렸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소에다가 따라와서 등을 두드려주었다.
"선생님, 그냥... 저기 앉아 계세요. 너무 창피해요."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침대까지 혼자 걸어갈 수 있겠어?"
그가 물을 건네며 부축해 주었다. 나래는 흐느적거리며 소에다에게 부축을 받고 침대로 돌아왔다.
발에 이렇게까지 힘이 빠진 경험은 처음이었다.
"괜찮아. 나래, 시간이 지나고 조금만 쉬면 나아질 거야."
소에다는 다시 숙취약을 건네며 부드럽게 말했다.
"이럴 때는 뭐든 따뜻하게 먹고 많이 자야 해. 자는 것만큼 좋은 약도 없거든. 위도, 마음도."
그의 목소리는 낮고 따뜻했다.
"선생님... 그런데 왜 오셨어요?"
나래가 힘없이 물었다.
"나래가 어제 술을 많이 마셨잖아. 그러니 당연히 신경 쓰여서 와봐야지. 챙겨줄 사람도 없는데."
머리맡에 앉은 소에다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래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그 말이 왜인지 모르게 가슴을 조여왔다.
술기운 때문인지 감정이 흔들리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심장이 두근거렸다.
"선생님, 저는 세상에 태어나서 숙취라는 걸 처음 겪어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었다.
소에다는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며 미소를 지었다.
"근데 나래... 어제 나한테 서운한 게 많아 보이던데. 내가 고백하고 나서 한 번도 연락이 없더니, 어제는 나한테 화가 많이 나 보이던데?"
나래는 어제 불꽃놀이에 미나코와 함께 온 소에다의 모습이 떠올랐다.
질투심.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질투심에 사로잡힌 여자의 행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제가 선생님께 서운한 게 있었다고요? 그럴 리가요."
나래는 순간 발끈해서 이불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래, 난 내가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 그 이후에 어떤 답장도 없었잖아. 많이 서운했는데."
소에다는 나래를 다시 차분히 자리에 눕히며 말했다.
"그건... 그건..."
나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저도 선생님 연락을 기다렸거든요. 문자도 없고 전화도 없어서 서운했나 봐요. 그리고 어제 순간적으로 술을 많이 마셔서... 감정 조절이 안 됐나?"
나래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말을 이어나갔다.
숙취 해소제를 마시니 졸음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필사적으로 눈을 뜨려고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힘이 눈꺼풀을 무겁게 만들었다.
"나래? 나래? 자는 거야?"
소에다가 나래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아... 잠깐 잠들었나 봐요. 미안해요, 선생님. 지금은 너무 졸려서... 나중에 다시 얘기해도 될까요? 어제 일은 다시 만나서 정리해요."
나래는 이미 꿈과 현실 사이 어딘가로 떨어지고 있었다.
소에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래를 침대에 바르게 눕혔다.
그리고 이불을 어깨까지 부드럽게 덮어주었다.
소에다는 조용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집스러운 입술, 졸음에 덮인 눈꺼풀, 그리고 가늘어진 숨소리. 그는 쓸쓸하게 웃으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나야말로 너의 연락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것도 모르고."
소에다는 나래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잠든 나래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스쳤다.
시계를 보니 벌써 9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병원 출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7월의 시원한 아침바람이 창문으로 스며들어 나래의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었다.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 두 사람을 은은하게 감쌌다.
작가의 말
어떤 분들이 제 글을 읽어 주시는지,
또 어떤 마음으로 읽어 주시는지 늘 궁금합니다.
어느덧 마흔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나이가 되었고,
30대 때부터 막연히 품어왔던 ‘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을
이제 연재라는 형식으로 풀어내며 조금씩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매일 글 속에서 제 작은 로망을 채워가고 있는 지금,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