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천장보다 가족의 얼굴을 택했습니다

2025년의 끝자락,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배운 것들

by 파랑몽상

우리는 5형제다.

1970년생 큰오빠부터 1980년생 막내 남동생까지, 어머니는 10년 동안 쉼 없이 생명을 길러내셨다.

나의 고향은 전라북도 완주군.

산골인 줄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자라던 내게, 네가 사는 곳이 진짜 산골이라고 일러준 건 대학 시절 여름 방학에 놀러 왔던 선배였다.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게 산밖에 없네?"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태어난 곳이 세상과 단절된 깊은 산속이었다는 것을.


우리 5형제는 각기 다른 도시에 흩어져 산다.

목동, 분당, 평촌, 용인, 그리고 저 멀리 영국까지.

부모 곁을 지키는 자식 하나 없는 것이 우리 부모님의 현실이자, 이 시대 노년의 쓸쓸한 풍경이다.


명덕리 산골 마을의 버버리 코트 신사

부모님이 젊으셨을 땐 자식들이 멀리 사는 게 문제 되지 않았다.

갈등과 슬픔이 수면 위로 올라온 건 아버지가 여든을 넘기면서부터였다.

올해 여든넷이 되신 우리 아버지는, 산골 마을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멋'을 아는 분이셨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학교에 나타나면 내 어깨엔 절로 힘이 들어갔다.

버버리 코트에 반짝이는 구두, 포마드를 잔뜩 발라 정갈하게 넘긴 머리.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모든 시선은 우리 아버지에게 쏠렸다.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멋을 부리며 사셨던 아버지가 지금은 병상에 누워 계신다.


아버지는 늘 죽음을 준비하듯 잔치를 요구하셨다.

"환갑만 지나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 잔치를 크게 해다오"

라는 말씀에 전주의 큰 호텔에서 밴드까지 불러 화려하게 잔치를 치렀다.

칠순 때도

"내 친구들 70%가 이미 떠났으니 마지막 잔치라 생각하겠다"며 또 한 번 호화로운 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팔순은 애석하게도 코로나와 겹쳐 조용히 지나가고 말았다.


하얀 천장보다 따뜻한 집의 공기를

여행과 술, 잔치와 춤을 사랑하던 낭만파 신사는 이제 집안 침대 위에서 꼼짝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호통치던 목소리는 가느다란 숨소리가 되었고, 아버지는 자꾸만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 보인다는 헛것의 이야기를 하신다.

처음엔 낯설었다.

피골이 상접해 누워 있는 모습이 내가 알던 아버지가 아니라, 낯선 노인 같아서 다가가는 것조차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주말마다 아버지의 마른 손을 잡는 일이 아무렇지 않다.

그저, 이렇게라도 곁에 계셔주길 바랄 뿐이다.

영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언니는 한 달 휴가를 내고 날아와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

언니는 이번이 아버지를 모실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며 후회 없이 살피겠다고 한다.

자식은 어떻게 해도 결국 후회가 남는 존재들이겠지만, 우리는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후회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우리는 병원의 차가운 하얀 천장 대신, 시골집의 따뜻한 공기를 선택했다.

엄마와 큰소리로 웃고 때로는 투닥거리며 싸울 수도 있는 '집'으로 아버지를 모신 것을 우리 5형제는 후회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생의 마지막 문턱을 넘는 순간이 온다면, 가장 기세등등하고 자신다웠던 그 시절의 모습 그대로이길 바란다.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았던 그 포근한 둥지 안에서, 가장 사랑했던 공간의 품에 안겨 평온히 눈을 감으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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