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이후, 약속이 남았다

홋카이도 그녀, 이나래-69화

by 파랑몽상

키스 이후, 그리고 약속

나래는 키스의 여운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루이보스 티를 한 모금 마신 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듯 깊게 들이마셨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소에다가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그럴 정도로 두근거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병원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전부 틀린 말은 아니잖아.”

소에다는 생각보다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사귀는 것도 사실이고,
동거는 아니지만 서로의 집을 오가는 것도 맞고,
무엇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인 것도 사실이니까.”

나래는 컵을 꼭 움켜쥔 채, 조용히 말을 이어가는 소에다를 바라보았다.

“나래와 사귀기로 마음먹은 순간,
이런 일쯤은 언젠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
여기서는 나도, 나래도 어쩔 수 없이 눈에 띄는 존재잖아.”

잠시 말을 멈춘 소에다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하지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는,
신기루처럼 금방 사라져.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나래는 이 일이 커다란 문제처럼 느껴져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소에다는 의외로 침착했다.

“그래도… 저는 걱정됐어요.
선생님 진료에 혹시라도 폐를 끼칠까 봐요.
간호사들 사이에서 선생님이 ‘우상’이라고 들었거든요.”

나래는 잠시 머뭇거리다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 소중한 소에다 선생님을,
제가 뺏은 것 같아서요.”

“내가 인기가 많긴 하지.”

소에다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어쩌겠어.
내 눈에는 나래밖에 안 보이는데.”

그리고는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이제 병원에 소문도 다 났으니까,
나래도 다른 남자 못 만나겠네?”

소에다는 그렇게 말하며 나래를 끌어당겨 가슴에 안았다.

“힘들면 나한테 말해.
누구보다 내가 네 편이야. 알았지?”

수많은 단어들 중,
어떤 말도 나래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순한 양처럼,
소에다가 이끄는 대로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소에다에게 이런 박력이 있었나.
그의 가슴에 안긴 채,
나래는 처음 보는 얼굴의 소에다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헤어지는 시간

소에다는 시계를 힐끗 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 진료 시간이네. 이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해.”

나래는 그의 품에서 천천히 몸을 떼어냈다.
아쉬움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소에다는 나래의 입술에 살며시 다시 입을 맞추었다.

“대신 시험 끝나면, 우리 제대로 데이트하자. 약속.”

“정말요?”

나래의 눈이 반짝였다.

“응. 그러니까 시험 끝날 때까지는 공부 열심히 해.”

나래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저, 하코다테 가보고 싶어요.
야경이 정말 아름답다고 들었어요.”

소에다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좋아. 그럼 하코다테로 가자.
시험 끝나고 주말에 출발할까?”

“네.”

나래는 환하게 웃었다.

현관문을 나서며 소에다는 한 번 더 뒤돌아보았다.

“나래, 소문 때문에 흔들리지 마.
네 옆에는 내가 있으니까.”

문이 닫히고, 풍경 소리가 방 안에 은은히 퍼졌다.
소에다가 남기고 간 향수 냄새가
한동안 나래의 코끝에 맴돌았다.

입술에는 아직 그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나래는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병원 쪽으로 걸어가는 소에다의 뒷모습이 보였다.

‘하코다테… 선생님과 단둘이.’

내일 있을 시험보다,
그와 함께할 여행 생각에 가슴이 더 뛰었다.

떨어진 낙엽에서 묵직한 초겨울의 냄새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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