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행 열차

홋카이도 그녀, 이나래 -71화

by 파랑몽상

겨울 문턱에 선 질문

"선생님은… 저와의 관계를 어디까지 생각하고 계신가요?"

이번 여행에서 나래는 이 질문을 반드시 꺼낼 것이다.

마음속으로 되뇌며 다짐했다.
33살의 소에다에게 21살의 한국인 유학생은
그저 잠깐의 연애 상대일 뿐일까.
아니면, 12살의 나이 차와 국적의 차이를 넘어설 만큼
진지하게 생각하는 상대일까.

소에다에게는 파혼한 과거가 있다.
그렇다면 나래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묵직한 여행 가방을 두 손에 든 채 현관 앞에 선 나래.
점점 깊어가는 겨울 추위에 온몸을 움츠렸다.

멀리서 소에다의 파란 승용차가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11월의 칼날 같은 공기.
겨울의 문턱에 선 후카가와의 아침은 매서웠다.

나래는 검은색 롱패딩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하얀 입김을 불었다.

"나래! 따뜻하게 입었구나. 잘했어."

소에다는 트렁크를 열며 나래의 가방을 조심스럽게 받아 넣었다.
그의 말투 하나하나가 나래의 가슴을 조용히 흔들었다.

후카가와 역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주차장에 도착한 소에다는 가방 두 개를 양손에 든 채
익숙한 걸음으로 역사 안으로 향했다.


예기치 못한 고백의 순간

"소에다 선생님! 오늘 아침 일찍 어디 가시나요?"

개찰구 앞 역무원이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여자친구와 하코다테 여행 다녀오려고요."

순간, 나래의 심장이 쿵, 하고 바닥 없는 곳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기쁨보다는 당혹감이 먼저 온몸을 휘감았다.
소에다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크고 따뜻한 손이 그녀의 손을 단단히 감싸 쥐었다.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후카가와에 우리 사이가 다 알려질 텐데요."

나래가 살짝 손을 빼려 하자,
소에다는 오히려 더 단단히 손을 감쌌다.

"이미 다 알고 있어. 병원에 오는 환자분들도 물어볼 정도야.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곧 특급열차 '카무이'가 플랫폼에 도착했다.

차가운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의 울림은
어쩐지 자유로웠다.

설렘과 불안,
그 경계에서 나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기차 안에서 피어난 다정함

열차 안, 나래의 옆좌석에 소에다가 앉았다.

"배고프지 않아? 삿포로 도착하면 에키벤 사서 먹자.
기차 타는 시간만 5시간이니까 잠들어도 돼."

"5시간이요? 에이~ 전혀 길지 않아요.
선생님과 함께인데요."

나래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며
그의 어깨에 살짝 머리를 기댔다.

소에다의 은은한 오크 향이
나래의 숨결 속으로 스며들었다.

소에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여
나래의 머리 위에 이마를 가져다 댔다.

기차는 묵직한 숨을 내쉬듯 철로 위를 미끄러졌고,
그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의 마음은
말 없는 방식으로 조용히 얽혀갔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드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삿포로에 도착하자 소에다는 한층 더 여유로워졌다.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니
감정 표현도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그는 나래의 어깨를 감싸기도 하고,
그녀의 농담에 가볍게 입맞춤하기도 했다.

역에서 나래가 좋아하는 연어초밥과
자신이 즐기는 돈가스 덮밥을 구입한 후,
둘은 곧바로 '호쿠토' 특급열차에 몸을 맡겼다.


그의 여자가 되어가는 나

나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의 다정함에 익숙해지고 있어.'

삿포로에 도착한 이후,
소에다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는 후카가와에서도 충분히 다정했지만,
이곳에서는 더욱 자연스럽게 감정을 드러냈다.
그 모습이 나래에게는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나래가 좋아하는 연어부터 먹어봐."

소에다는 초밥을 조심스럽게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먼저 먹어봐, 지금 연어 제철이야.
하코다테 가면 더 맛있는 초밥 잔뜩 사줄게."

나래는 웃으며 초밥을 집어 들었다.
그녀가 입에 넣는 모습을 지켜보던 소에다는
무언가 안심한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소에다는 웃으며 그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래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이 사람의 여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문득 미나코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소에다 선생님한테 지키지 못한 사람이 있대요.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어요."

나래는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
왜 그 사람을 지키지 못했을까.

그리고 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 사람처럼,
소에다가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21살 한국인 유학생.
소에다의 집안에서 보면
나래는 환영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정성스럽게 준비된 사랑

소에다는 이 여행을 위해
한 달 전부터 계획을 세웠다.

나래가 좋아할 만한 장소들을 하나씩 예약하면서,
그녀의 미소가 머물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여정을 채워갔다.

유노카와의 온천 료칸도,
그가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내민 마음이었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싶다는 건,
그 사람을 오랫동안 생각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지금의 소에다에게 나래는
하루의 시작이자 끝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간절히 원했다.
그의 진심이 말이 아닌 온기로
나래에게 닿기를.

기차는 초겨울 풍경 속을 조용히 미끄러졌고,
창밖의 나목처럼
서로 다른 감정이 고요히 흔들리고 있었다.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열차 안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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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오자키 유타카의 〈졸업〉이라는 노래를 알고 있을까요.

일본 유학 시절,
저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많은 밤을 보냈습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멜로디를 타고 마음 안으로 흘러들어오던 시절이었죠.

아마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I Love You〉일 거예요.

오자키 유타카는
종종 우리나라의 김광석과 비교되곤 하는데,
그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담담하게 부르는데
이상하게 마음 한가운데를 건드리는 노래.
울부짖지 않는데도
듣고 나면 가슴이 오래 저릿해지는 목소리.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제 귀 안에서는 그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문장을 쓰다 말고,
혼자 조용히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괜히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했고요.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그런 순간들을 붙잡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글을 쓰거나, 어떤 이야기에 빠져 있을 때
자주 듣는 음악이 있으신가요.

그 음악이
지금의 여러분을 조금 닮아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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