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그녀, 이나래-75화
밤이 깊어지자 나래는 조용히 유카타로 갈아입었다.
얇은 천이 어깨를 감싸 내려오자, 거울 속의 그녀는 낮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더 차분하고, 어딘가 낯설고, 조금 더 어른처럼 보이는 얼굴. 그 눈빛이 스스로도 익숙하지 않았다. 나래는 슬며시 시선을 거두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소에다도 유카타 차림으로 돌아왔다. 말없이 마주 선 두 사람 사이에, 설명할 수 없는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흘렀다.
각자의 이불이 나란히 펼쳐져 있었다. 그 작은 경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가깝지만 아직 닿지 않은 거리. 그 거리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나란히 누웠지만 천장만 바라보았다. 방 안에는 소리가 없었다. 창밖에서 바닷소리만 낮게 들려왔다.
"나래야."
어둠 속에서 소에다의 목소리가 낮게 번졌다. 조심스럽고,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였다.
나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손이 이불 밖으로 나와 천천히 그녀의 손을 찾았다. 손끝이 맞닿는 순간, 나래의 심장은 소리 없이 박자를 잃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의 망설임과 다짐이 손길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소에다가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나래가 부서질까 두려운 사람처럼, 조심스럽고 느린 손길이었다.
"사랑해."
짧은 한마디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오래 쌓여온 감정이, 차마 꺼내지 못하고 눌러두었던 시간들이 담겨 있었다.
나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도… 사랑해요."
생전 처음 입 밖에 꺼내는 말이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방 안에 가득 찼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다.
입술이 닿았을 때 방 안의 공기는 더욱 고요해졌다.
서두름 없는 키스였다. 깃털처럼 가볍고, 확인하듯, 그러나 분명하게. 나래의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평온했다. 소에다가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고, 나래는 그대로 그의 가슴에 기댔다.
서로의 숨결이 가까워지고, 심장 소리가 겹쳐졌다.
그의 손이 나래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소에다의 체온이 유카타 너머로 스며들었다. 그 온기 안에서 나래는 자신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무엇이 달라지는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어떤 경계 하나를 넘어온 것 같은 느낌. 소녀가 한 발 물러서고, 그 자리에 누군가를 믿는 여자가 조용히 서 있는 느낌이었다.
창밖에서는 하코다테의 바다가 잔잔히 숨을 쉬고 있었다. 밤새 일정하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두 사람의 침묵을 대신했다.
"내일 아침이 되면… 이 모든 게 사라지는 건 아니겠죠?"
나래의 목소리에는 행복과 두려움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꿈이 아니야. 이제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사는 거야."
그 말은 약속이라기보다 결심에 가까웠다. 소에다는 말을 마치고 그녀를 더 꼭 안았다. 두 번 다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나래는 그 말을 가만히 가슴속에 담았다.
그 밤, 두 사람은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처음으로 같은 미래를 바라보았다. 하코다테의 밤은 깊어갔고, 나래는 그의 품 안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녀에게 있어 이 밤은 단순한 첫날밤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사랑을 온전히 믿기로 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소에다는 잠든 나래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 고요한 얼굴을, 이 여린 숨소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그는 그 밤 가슴 깊이 새겼다.
창밖의 바다는 밤새 낮고 일정한 소리로 그들 곁에 머물렀다.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이야기였는데,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끝내 이 이야기를 놓지 못할 것 같습니다.
『홋카이도 그녀, 이나래』를
마지막까지 써 내려가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