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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웨 May 25. 2024

이제는 다문화 사투리


겨울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오후, 나는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붐비던 평일과 달리 오늘 스타벅스 안에는 좀 조용했다. 우리가 2층에 올라왔을 때, 몇몇 젊은이들은 귀에 에어팟을 끼고 앞에 놓인 패드나 컴퓨터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녀는 음료가 놓인 쟁반을 들고 어디에 앉을까 서성거렸다. 



© cyzx, 출처 Unsplash



“여기에 앉자.” 나는 젊은이들 사이의 빈자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안자마자 그녀는 나를 향해 몸을 기울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다른 자리로 갈까요? 옆에 사람들이 다 공부하고 있네요.”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방해할까 봐 마음이 불편한 것 같았다. 나는 여기가 독서실이 아니라 사람들이 대화하는 공간이라고 친구를 안심시켰다. 



우리는 말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늘 만날 때마다 했던 대로 한국어가 아닌 모국어로 자유롭게 대화하기 때문에 그랬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공간을 좋아했다. 서로 간단하게 근황을 물어보고 나서 그녀는 최근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려줬다. 



© henry2cute, 출처 Unsplash



그녀는 산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산을 돌고 나서 차를 주차하고, 그녀는 손에 등산화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그 안에는 3살쯤 된 아이와 그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이 이미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문을 향했다. 갑자기 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운동화를 안 신어요?” 



아이가 자기 엄마에게 말하는 것이 그녀의 귀에 들어왔다. 그녀는 못들은 척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마자 그녀는 얼른 나갔다.



“내가 왜 그랬을까요.” 그녀는 답을 구하고 싶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기가 너무 귀엽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결국 다시 삼켰어요. ” 



그때 마음속으로 어린 친구에게 설명하고는 싶었지만, 실제로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면 얼른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머리에 맴돌았다. 



“아마 나의 형편 없는 한국어 발음을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그랬나 봐요.” 그녀는 허탈하게 웃었다. 



사실 나도 그런 때가 많았다. 명절이나 가족 모임 때 귀여운 조카들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결국 ‘안녕’밖에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우스꽝스러운 말투를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그녀도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한국어를 못하는 것을 숨기려고 한 이유가 아닐까? 다른 사람이 자신을 차별할까 봐 두려워서 그런 것 같다. 그녀는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 국적도 취득한 그녀는 아직도 이방인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 privetannet, 출처 Unsplash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도 스스로 한국인이 아니라는 그녀를 보면 막상 궁금해진다. 한국인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 아니면 한국어를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사람? 언어로는 국적을 규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요즘에는 외국어 3개 나 4개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래서 꼭 그 나라 언어를 완벽히 말할 수 있어야 그 나라 국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곳에 태어난 한국인이라고 해도 말을 잘못하는 사람도 자신은 이 나라 국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그녀도 당당하게 자신이 다문화 국민인 것을 당당하게 여겼으면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이러한 다문화 국민을 받아 들였으면 한다.



“너도 한국 사람이에요. 한국어가 틀려도 괜찮아요. 네가 말하는 한국어는 그냥 다문화 사투리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내 말을 듣고 그녀는 더 이상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크게 ‘하하’ 웃었다.



© brookecagle,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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