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함께 들었던 음악과, 함께 뛰었던 공연과, 함께 거닐었던 일상 속 거리와, 함께 구경했던 낙조와, 함께 감상했던 영화와, 함께 나누었던 교감이 사무치게 그립다.
비슷한 취향의 음악으로 이어진 소중한 인연은, 자아가 형성되고 있던 순수한 나의 또다른 자아가 되었다. 세상에 우리 둘 밖에 없는 것 같은 우리 모두 처음 겪어보는 그 세상의 향기.
그와 들었던 음악은 어떤 서사를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음악의 목소리와 갖갖은 악기와 어우러진 감성으로 말없이 교감하기 충분했다. 잔잔한 무드에선 함께 푹 젖어들며 음미하고, 경쾌한 바이브에선 함께 온 몸을 들썩이며 춤추었다. 특히 음악에 몸을 맡겨 자유로이 춤추는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장난끼 넘치면서 사랑스러웠지. 어릴 적 잊어버린 채 가슴에 묻어두었던 나의 순수함을 그를 통해 비춰 꺼내볼 수 있었고, 나는 점점 새롭게 기억하고 동화되어가는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아끼게 될 수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음악 하나로만 이어지곤 했다. 서로가 어떤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함께 이 음악을 느낄 수 있는 순간으로 우리의 뜨거운 정서는 교감될 수 있었고, 우리는 절로 행복했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늘 주인을 만나는 강아지 마냥 설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는데 오고 가는 동안의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의 사슴같은 눈망울, 건강한 호르몬, 살결, 듬직한 자태, 믿음직한 손. 존재 자체만으로 한없이 반갑고 아름다운 존재였다.
그와 같이 있으면 내 어딘가 허전하고 다 자라지 않은 부족한 자아의 빈틈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 결핍의 환상은 덕분에 향긋한 기억이 되어 가슴 속으로 자리잡았다.
해질 녘의 낙조, 분홍빛 -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던 나를, 그는 존중하고 아껴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으로 함께 교감해주었다. 우리의 오후 무렵은 낙조를 감상하는 시간들로 채워져나갔다. 일부러 하던 일을 멈추고 뛰쳐나가 감상하는 낙조는 비싼 돈을 내고 찾아가는 박물관의 전시만큼 가치있고 유일했다. 세상에 하루 뿐인 소중한 석양이니까... 우리의 사진첩은 아름다운 낙조의 사진들로 가득했고 또다른 정체성이 되었다. 우연히 마주친 낙조를 볼 때의 반가움은 한 숨의 산소처럼 나긋했다. 아직도 낙조를 보면 그와 함께 감상했던 시선이 생각난다. 그대도 이걸 함께 보고 있을까, 그리워하고 있을까.
그는 자신을 굉장히 냉정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면이 강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받은 사랑은 그런 성향과는 거리가 멀었고 따뜻하고 다정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의 그런 모습을 스스로 알아봐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너의 그 모습이 좋다고 아름답다고 계속 이야기 해줄 걸, 후회가 된다. 그대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어리석었던 내가 계속해서 생각난다. 그 많은 순간들이 한순간에 정리된다는 것은 당연히 비례할 수가 없는데 나는 무엇을 믿고 그렇게 내 마음을 꾹꾹 외면하고 억눌러버린걸까. 사람은 언제나 완벽할 수 없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지금만큼은 모르고 싶다. 그래야 그런 나에게 용서를 청할 수 있을 것이기에...
그와 함께 있을 때의 유치하고 순수했던 나의 모습,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다양한 취향을 나눌 수 있던 교감, 사랑스러웠던 나의 미소. 이 우주 시공간 어디에 생생하게 살아있겠지?
언제나 무한히 내리쬐는 태양의 빛처럼 우리의 찬란했던 과거 또한 어딘가에 살아 숨쉬어, 지금처럼 말랑거리는 나의 감정을 한번씩 건드려줘. 간간히 아리고 쓰라리지만 그 때의 나도 그대도 우리도 빛나도록 아름다웠다.
그리운 건 그 때이기도 하고, 그대이기도 하다.
내 인생의 찬란한 영감이 되어준 거울처럼 나를 비춰준 그대여, 이 순수함을 간직한 채로 언젠간 하나가 되어 꼭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