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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Aug 10. 2023

음식을 담지 않는 그릇

바도

음식을 담지 않는 그릇     


  전에도 밝힌 내용이지만, 나는 원두를 두 종류로 구매한다. 하나는 늘 먹던 적당한 원두. 다른 쪽은 안 마셔본 '도전' 원두. 마침 원두가 떨어져서(늘 먹던 적당한 원두 쪽) 구매를 해야 하는데 단골 로스터리가 문을 닫아서 창고형 로스터리 카페를 물어물어 새로이 찾아갔다. 적당한 원두를 사고 커피를 마시면서 카페를 둘러보고 있는데, 마침 매대에서 도기를 함께 판매하는 중이다. 매대에는 판매하고 있는 도기에 대한 작은 브리핑 노트가 있었는데, 어쩐지 그것은 브리핑 노트보다는 하나의 절절한 편지처럼 느껴지는 종류의 글이다. '그는 얼굴이 못생겼기 때문에 오직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반세기 이상을 도자기와 향기에 몰두 하였습니다'라는 식의 간단한 글이다. 자신의 외적인 컴플렉스라는 부정적 에너지를 창작을 위한 연료로 불태우다니. 정말 근사하고 멋진 태도다. 아닌게 아니라 그릇들은 하나 같이 정갈하고 매끈한, 하나의 완결된 형태의 잘생긴 그릇으로 보였다. 도기 협회의 교과서가 있다면 하나의 기본 예시로 들어가도 좋을만큼 굉장히 기본에 충실한 도자기다. 좌우 균형이 정확한 대칭이고 모나거나 울퉁불퉁한 곡면은 철저하게 배제했다. 색도 자연의 유색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은은하고 아스름푸레한 색을 입혔다. 마치 사람으로 치자면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니 잘생긴 컴퓨터형 미남이다. 분명 그가 만든 향기도 과하지 않고 그윽하고 깔끔할 것이다.      


  도자기들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서서히 내가 깨달은 것은, 이 그릇들은 '잘생긴' 목적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그릇은 어쩐지 잘생기기만 한 도자기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물론 그 외모에서 흠결을 찾을 수 있는가 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어쩐지 거기에는 다분히 인간적인 매력이라거나, 자연스럽게 손이 가서 떼를 묻게 하고 싶어지는 자발성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한 흙이었던 그릇이 가마속에서 도기가 되며 자연스럽게 내부에 품게되는 열원 같은 것이 결여된 느낌이다. 그것은 모공으로 퐁퐁 빠져나가는 수분처럼 어딘가로 사라졌다. 겉면에 번쩍번쩍 유기 코팅이 되어있다 한들 그것은 화장처럼 단순한 눈속임일 뿐이다. 외모는 완벽한데 속은 묘하게 비어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몇몇 연예인처럼. 만약 자신이 '못생겼기 때문에' 외적으로 완벽한 그릇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고 한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은 성공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컴플렉스를 극복하고 승화시키는 수단이 되었다기 보다는 되려 더 두드러지게 하는 작업이 돼버렸는지도 모른다. 요컨대 장식장에 넣어두고 싶은 그릇이지 직접 사용하고 싶은 그릇은 아니라는 말이다. 결정적으로 그 도기 또한 스스로도 무언가를 담고 싶어하는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외적인 것은 포기하고 다른 곳에서 승부를 봐야한다. 물론 그런 기분은 나도 무척 잘 알고 있다. 나도 전혀 잘생긴 외모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형이 늙어 가는 일만 남은 사람이 자신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내부를 넓혀가는 방법 뿐이다. 세상에는 '외모 컴플렉스'를 도자기로 해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사람도 있다. TV쇼 '쇼미더머니2'에서 스윙스는 무대 위에서 그네를 타고 딸기 우유를 마시면서 괴물같은 랩을 한다. 말그대로 무대를 부수고 난 뒤에 그는 마지막으로 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모든 관객과 시청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그 순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몇 달 전부터. 아니, 태어나고서 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요. 그말이 뭔지 알아요? 그말이 뭐냐면... 그말이 뭐냐면... 못생겨서 미안해' 얼마 안되는 인생을 살면서 나는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컴플렉스를 꺼내놓는 것은 그 전에도 그 뒤로도 본적 없다. 컴플렉스라는 말 그대로 '복잡한' 요소의 보이지 않는 관념을 스윙스는 보이지 않는 칼로 정밀하게 도려내서 보란듯 내놓는다. 몇 십 번이나 보고 또 봤을 그 장면을 보면 나는 언제고 모골이 송연하다. 부끄럽지만 매번 울컥하고 만다. 스윙스는 그 사과 아닌 사과를 하면서 어떤 대답을 듣고 싶었을까. 그는 '괜찮아'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야 너 안 못생겼어'라고 해줘야 하는 걸까. 혹은 우리 모두는 침묵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때때로 이런 상황에 놓이면 솔직히 쥐구멍에 숨어버리고 싶다. 대답이 궁한 질문을 듣게 되는 것처럼 무기력한 일은 없다. 스윙스가 오직 화면 속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친구와 언쟁을 하다가 내가 했던 무수한 잘못을 우다다 비가 쏟아지듯 말하길래 나는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미안한 마음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내가 '미안하다'고 하니 상대는 '지금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잖아'라고 했다. 그럴 때는 나도 참 암담한 심정이다.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사람과 원하는 것을 내어줄 수 없는 사람 중에서 더 막막한 심정인 사람은 누구일까. 그런 고민을 하게 하는 질문들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상황이 닥치면 충분히 고민하여 답을 내릴 시간적 여유 따위는 없는 것이다. 못생긴 얼굴 때문에 잘생긴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라는 사람에게도 나는 오랜 고심끝에 이렇게 타닥타닥 타자를 쳐가며 생각을 정리해야만 한다. 그 자리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그릇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고개를 돌려 남자 직원들을 기웃기웃 둘러 보면서 가장 못생긴 사람을 찾아보는 정도. 미안한 말이지만 못 찾았습니다. 이 사람인가 싶으면 또 저사람인가 싶고. 아마도 그는 생각하는만큼 그렇게 못생기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약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것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소중한 사람은 그 존재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약점이 되기도 한다. 컴플렉스(열등감)를 드러내는 사람들의 심정은 대체로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일도 그와 비슷하다. 프랭크 시내트라가 부르는 '킬링 미 소프틀리'같은 심정. 그것이 사실은 단점이 아니기를 내심 바라는 마음과 더하여 약점까지 오롯이 이해 받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은 모든 단점과 약점을 드러내는 용기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마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이 되어버린 그에게, 그저 오롯이 이해받기를 바라는 지도 모른다. 음식을 담고 싶어하지 않는 그릇이 그 자체로 이해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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