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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린 Mar 21. 2021

위험한 전세계약

잠 못이루던 나날들

나는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 전세보증금을 마련한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 도움 없이 전세보증금을 마련했다는 뿌듯함에 설레는 마음으로 부동산에 연락해 집을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차가 없는 내게는 전철, 터미널, 기차 등의 대중교통은 내게 필수였기 때문에 집을 구하기 전 1순위는 교통이었습니다.


그러다 내 상황을 알고 있는 지인의 추천으로 역세권 소형 아파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지인은 이사를 하기 위해 집을 내놓은 상태였고, 퇴근 후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집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세였기 때문에 본인의 월급을 털어 도배, 장판을 새롭게 해서 깨끗한 상태였습니다. 다만 욕조가 깨져 있었는데 전세라는 이유로 임대인이 교체를 안 해준다 해서 그냥 실리콘만 붙여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임대인은 아파트 단지 내에 7채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부유한 사람이었고, 대출도 없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계약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외부에서 인구가 계속 유입되고, 아파트 가격이 상승 시점이었습니다. 집 구하기가 쉽지 않던 시기였기에 임대인은 전세 계약 때 Max로 전세금을 받았습니다. 나는 욕조 수리와 보증금을 깎아 달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시기에는 집 구하기가 어려웠고, 가격을 올려도 계약할 사람들은 많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잘 나가던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거래도 잘 안 되고, 역세권에 새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나는 4년을 거주했고 마지막으로 재계약을 하고 싶었지만, 이사를 할까 보증금을 돌려받고 재계약을 할까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사비용에 복비 부담에 상황이 좋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에 우선 협상을 해 보고 재계약 여부를 판단하기로 하였습니다.


4년 동안 거래하는 부동산 사장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임대인이 의뢰한 부동산에서는 내게 추가 금액을 내고 해당 집을 매매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만약 제가 이 금액으로 집을 매매하면 수리비는 얼마나 나와요?”

“현관 타일부터 도배, 장판, 욕실, 싱크대, 창은 모두 샷시로 바꾸고, 베란다까지 올수리를 하면 대략 1500~1600 정도 나옵니다.”

“그럼 생각해 볼게요.”

수리가 되지 않은 집을 올려서 매매한다?? 그럼 수리비는 제가 부담해야 하므로 엄청 비싸게 매매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다른 부동산을 방문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동산 사장님은 이분이 실제 임대인이 아니라 했습니다. 실제 임대인은 아무도 본 적이 없고,  계약서에 작성된 이름은 임대인, 임대인의 동생이라고 했습니다. 이제까지 임대인으로 위장해 세입자들과 통화를 한 사람은 임대인이 아닌 그의 동생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처음 4년 전 첫 계약서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위임장의 대리인은 그때 당시 부동산 사장님, 연락처는 임대인의 대리인, 결국 대리인이 다시 대리인을 위임해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위험한 계약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재계약을 앞두고 대리인의 실체를 알고 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대리인은 세입자 구하기가 어렵다는 걸 알고 거의 협박에 가까운 말을 했습니다.

"내가 깨진 욕조와 변기 교체해주고 보증금 OOO 만원 돌려줄 테니 재계약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집 안 나가도 보증금 못 돌려줘요."

"그럼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가져오세요."

"무슨 위임장이요?"

"왜요? 임대인 아니라면서요?"

대리인은 여전히 세입자를 무지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 경제적으로 악재가 겹쳤던 시기라 방법이 없어 그 조건으로 재계약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대리인이 위임한 부동산의 계약과정에 문제가 있어 구청 부동산과에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부동산의 양아치 행동에 대해서는 법적인 위반사항이 아니라는 답변만 받았습니다. 내가 신고를 했다는 것을 알고 그 부동산에서는 나와의 계약을 거절했습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친필 위임장

“우리는 그렇게 신고를 당하면서까지 당신 같은 사람들과 계약할 생각 없어요. 알아서 하세요.”

그러자 집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끼리 계약합시다. 나는 돈 드는 거 싫어요."

거의 반협박에 부동산을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이미 소문이 났는지 다른 부동산에서도 거절을 당했습니다. 결국, 근처 부동산에 자문을 구하고 계약서를 작성해서 계약 날 욕조, 변기 교체 및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전세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고, 인테리어 업체가 바로 집을 방문했습니다. 업체는 욕조, 변기 교체할 때 세면대 등 여기저기 교체하길 원했지만, 대리인은 거절했습니다. 결국, 인테리어 업체는 본인들에게 이득이 없는지 바로 철수했습니다.


대리인은 인테리어 업체가 철수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변기는 그냥 쓰세요. 나는 돈 드는 거 싫어요.

원래 계약 전에 미리 수리해주고 계약을 해야 했지만, 당일 조건으로 개인 간 거래였기 때문에 제대로 당했다는 생각이 나와 가족들은 분노를 참지 못했습니다. 계약위반으로 파기할까 생각 중 바로 oo일 날 욕조 교체 연락이 와서 대충 살다 가자는 생각에 다시 2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2년 후 나는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부동산의 가치가 더더욱 하락하자 대리인은 세입자들의 연락처를 차단하고 연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나는 밤새 부들부들 떨면서 그다음 날 기존의 계약서에 명시된 해당 아파트의 7개의 호실을 직접 방문하였습니다. 그중 이미 3채는 팔려서 집주인이 바뀐 상태고 나머지는 세입자를 만날 수 없거나 이상한 사람이라 판단했는지 거절당했습니다.


나는 치를 떨면서 다시 부동산을 방문하였습니다. 대리인의 인성은 얼마나 유명한지 이 근처에서 부동산을 오래 운영한 사람이라면 안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돈 쓰는 걸 엄청 싫어하면서 예전에는 이렇게 해도 집이 잘 나갔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달라졌습니다. 새 아파트가 그렇게 많이 생겼는데 누가 낡은 집에 살려고 할까요? 나와 부동산 사장님의 생각과 대리인의 생각은 반대였습니다.


아무리 역세권이라도 20년이 넘은 미 수리된 아파트는 너무 낡아 보는 사람마다 계약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대리인과 대화가 아닌 카톡으로 집수리 조건으로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고 지긋지긋한 악몽의 구렁텅이를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입자는 순진한 청년이었는데 위임장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뭔가 짠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나는 그곳을 안전하게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더 강했습니다.


엄마는 순진한 청년이 안타까워 부동산 사장에게 “전세랑 매매랑 차이가 거의 없는데 돈 좀 더 보태서 이 집 그냥 매매하라 하세요.”라는 말을 하고 그 청년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계약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이사하는 날 다행히 보증금과 장기수선충당금은 모두 돌려받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부동산에 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때 그 전세 보증금 때문에 잠 못 이루던 나날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위임장? No, 계좌번호가 임대인 것이 아니다?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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