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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행(小笑幸)
먹어서 행복해지기로 했다.

싱글 직장맘의 집밥 먹기

by 규아

나는 홀로 산다.

돌싱이 된 지 어느덧 14년.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어 학교가 있는 도시로 흩어졌다. 내 나이 또래 외동은 흔치 않지만, 나는 무남독녀로 자라났다. 형제 없이 자란 어린 시절, 그리고 3년이 넘는 고시공부 덕에 '혼자'는 내게 익숙한 방식이었다. 또 솔직히 말하면 혼자가 편하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혼자서도 한 상 잘 차려먹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직장과 살림을 병행하게 되자 밥을 챙기는 일이 하나의 '노동'이 되었다. 퇴근 후 요리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마치면 진이 빠졌다. 그래서 밥은 주로 사 먹거나 밀키트로 대충 때우기 일쑤였다.


그렇게 살던 3년 전 어느 날.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 후 '동위원소 치료'라는 것을 받아야 했고, 그걸 준비하기 위해 아주 까다로운 식단을 따라야 했다. 몸 안에서 요오드 성분을 제거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바닷가에서 나는 음식은 전면 금지. 소금조차 천일염 같은 일반 소금이 아닌 '저요오드 소금'만 써야 했다. 과일, 채소, 가공식품, 심지어 소스까지도 성분을 꼼꼼히 따져야 했다. 천일염은 어느 음식에나 들어가기 때문에 외식이나 배달은 꿈도 못 꿨다. 치료를 준비하는 내내, 재료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요리를 해야 했다. 조미료 성분표까지 일일이 확인해야 해서 점심시간엔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거나 도시락을 싸갔다.


"설마 먹는 것으로 뭐가 달라지겠어?" 반신반의하면서도 8주간 저요오드 식이요법을 실천했다. 그랬는데 정말, 체성분 수치가 달라졌다. 내 몸이 변화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 '사소한 실행들'이 내 몸을 바꾼 것이다.


그 이후 음식이 새롭게 보였다. 치료가 끝나고 나서도, 식재료에 대한 관심은 멈추지 않았다. 식단을 짜고, 직접 요리하고, 내 몸의 반응을 살피게 되었다. 그제야 알았다. 음식이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었다. 먹는다는 건, 나를 살리고 지키는 일이었다.


두 달간 집밥만 먹다가 치료 후 처음으로 외식을 했을 때, 음식이 '심심하게' 느껴졌다. 간은 무척 세게 느껴졌지만,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웰빙은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집밥 먹기로 충분하다는 걸.


지금은 아침은 물론이고, 점심도 집에서 챙겨 먹는다. 저녁 약속도 좀처럼 잡지 않는다. 일주일 분 식단을 미리 짜고, 정성껏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린다. 요리를 준비하고, 조용히 식사를 하다 보면 어느새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 기억들로 식탁이 한층 더 풍요로워진다. 비록 혼자 앉은 식탁일지라도, 마음만은 혼자가 아니다.


습관적 먹기가 아니라 나를 살리고 지키는 예식, 먹는 것으로 행복을 찾기로 했다.



다음 글에서는, 내 집밥 인생의 1번 반찬 ‘시금치무침’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언제나 우리의 밥상을 지키고 있는 그 푸르른 맛, 시금치. 아주 오래된 치유의 색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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