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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행(小笑幸)]
살려줘요, 뽀빠이! 시금치 무침

싱글직장인의 집밥먹기

by 규아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다. 체질에 맞게 태어난 땅의 음식, 제철 식품을 먹으면 음식이 약이 된다. 갑상선암 치료에 식단이 필수였던 것처럼, 먹는대로 몸이 만들어진다.


로컬푸드 매장에 가면 금방 밭에서 따온 제철 식재료가 가득하다. 요리할 줄을 몰라도 싱싱함에 반해 일단 집어들고 시도해본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이뻐보이는 시금치. 싱그러운 초록빛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금치는 겨울이 제철이지만 사시사철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채소다.

시금치가 참 곱다.

겨우내 따사한 햇살과 땅의 기운을

담뿍 머금은 싱그러움

푸릇푸릇, 여리여리한 청초함 위로

선홍빛 발그레한 수줍음이

눈길을 멈추게 한다.

흙묻고 헝클어진 모양새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고울까.



시금치는 원래 이란(페르시아)에서 재배된 채소라고 한다. 조선 초기,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지금은 가장 흔한 채소 중 하나가 되었다. 겨울을 막 넘긴 이른 봄에 먹으면 특히 신선하고 달다.

자세히 보면 시금치는 제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섬초, 남해초, 포항초…. 이름도 정겹고, 맛도 다 다르다.

- 섬초는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품종 개량된 것으로, 봄동처럼 옆으로 퍼져 자란다. 식감이 좋고 단맛이 강해 생으로 먹어도 맛있다

- 남해초는 경남 남해에서 자라며, 줄기가 길고 튼튼하다, 잎이 두껍고 당도가 높아 저장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 포항초는 경북 포항에서만 재배된다. 다른 지역에 심었을 때 특유의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바닷바람을 맞아서 염분이 적당히 배어있고, 크기가 작고, 뿌리 쪽은 붉으며 당도와 저장성 모두 좋다.

이처럼 시금치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맛이 든다. 겨울을 견디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 시금치는 더 단단하고 달다. 그 기다림과 인내가 시금치의 단맛을 만든다.



다운로드 (1).jpg 뽀빠이 만화 포스터


뽀빠이 살려줘요!

브루터스에게 잡힌 올리브가 외치면 뽀빠이는 시금치 통조림을 꺼내 한입에 털어넣는다. 그러고나면 근육이 불끈불끈 해지고, 힘이 번쩍 솟아난다. 어린시절 TV에 나오는 뽀빠이처럼 되고 싶어서 시금치를 많이 먹었다. 미국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고. 1930년대, 이 만화의 영향으로 미국의 시금치 소비가 무려 30%나 급증했다고 한다. 시금치의 ‘슈퍼푸드’이미지는 여기서 비롯됐다.


실제로 시금치는 근육 세포를 형성하는 철분을 함유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시금치의 철분에 대한 과신은 과학자의 실수(?) 덕도 있었다. 1987년 독일 과학자 폰 울프가 시금치의 철분 함유량을 표기하며 소수점을 잘못 찍었다. 3.5mg이 10배 많은 35mg으로 잘못 퍼지며, 졸지에 ‘초인을 만드는 채소’가 되었다는 썰.


오늘 식사는 시금치로 시작이다.

먼저, 시금치를 살짝 물에 담가 흙을 가라앉힌다. 물을 몇 번 갈아가며 깨끗이 씻는다.

가족_사진_20240306_1.jpg

1. 소금을 넣은 물이 끓으면, 씻어둔 시금치를 넣는다

2. 다시 끓어오르면 시금치를 한번 뒤집고, 바로 꺼내어 찬물에 식힌다.

3. 국간장, 다진 마늘, 참기름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4. 물기를 뺀 시금치에 통깨, 굵은 소금, 다진 파를 넣고, 섞어놓은 양념장을 부어 무친다.

5. 마지막 간은 가는 소금으로 한다. 맛소금을 살짝 뿌려도 맛있다.

가족_사진_20240306_2.jpg 남은 게 있어서 양파도 넣었다. 시금치의 초록과 양파의 하양이 어우려져 색감이 좋다.


나의 오늘 1인 밥상

지난 번의 콩나물과 김치부침개가 남아있고, 냉동실에 얼려둔 바지락이 생각나 순두부찌개도 끓였다.

가족_사진_20240306_4.jpg 오늘 아침은 바빠서 보관용기 그대로~




오늘도 뿌듯뽀땃한 아침이다. 다음 편에는 '먹으면 키가 키 큰다'던 콩나물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콩나물무침 하나로 밥 한공기 뚝딱 해치우던, 그 소박한 한 끼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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