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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소세지 전성시대

직장인의 1인 밥상

by 규아

갑상선 수술을 하고 남은 암세포를 없애기 위한 동위원소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따라야 했던 저요오드 식이요법. 성분을 알 수 없는 음식은 전부 금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 싶어진다. 나이 오십이 되어도, 청개구리 법칙은 여전하다. 그때 가장 먹고 싶었던 ‘불량식품(?)’은 계란에 입혀 기름에 튀긴 분홍 소시지였다.


노릇하게 구운 계란옷을 입은 분홍 소시지. 우리 세대 ‘국민학교’ 도시락 반찬 1등이었다. 점심시간이면 분홍빛 소시지와 계란프라이를 사알짝 올려둔 도시락은 그 자체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아이들은 그런 도시락 앞에 몰려들었고, 소시지 하나 얻어먹겠다고 슬쩍 말을 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불량식품이라며 절대 싸주지 않았다. 대신 두부조림이나 나물, 멸치볶음 같은 인기 없는 반찬이 늘 도시락을 채웠다.


그 덕분에, 나는 아이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 시절에는 반찬이 인기의 척도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판도가 바뀌었다. 분홍 소시지의 자리를 ‘햄’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정체 모를 쫀득한 햄은 그 시절 거의 ‘혁신’에 가까웠다. 햄은 도시락계의 센세이션이었다. 햄 반찬 하나로 도시락 주인이 중심이 되던 그때도, 나는 여전히 건강 반찬을 싸 갔다. 인스턴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밥상에서 햄 한번 제대로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햄을 자주 싸 오는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으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지금은 건강상의 이유로 외면당하는 분홍 소시지도 햄에 밀려나기 전에는 이렇게 한때 전성기가 있었다. 그 시대를 잊지 못하는 우리 같은 중장년층은 ‘추억의 도시락’에서 어린 시절을 찾는다. 익숙한 짠맛과 기름기 어린 향. 그걸 꺼내어 굽기 시작하면, 집 안 가득 어린 날의 기억이 퍼진다. 그 추억을 먹기 위해 그 분홍 소시지를 굽는다.




식이요법이 끝나자마자 첫날 만들어먹은 소시지.


계란물에 풍덩 담가 기름에 지글지글 구워 내기만 하면 되는 초간편 요리. 예전 어른들은 너무도 간단한 게 민망했던지, 계란물에 파를 송송 썰어 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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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걸 못 먹었다니….. 아파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평범한 것의 소중함을.




우리나라에서의 분홍 소시지는 1960~70년대 미국 구호물자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원래 어육소시지다. 당시 고기보다 생선살을 넣는 것이 단가가 쌌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고로 어육소시지의 기준은 어육이 20% 이상인 제품이며, 수산가공품으로 분류된다. 어육함유량 20% 미만인 혼합소시지와 구별된다.


한때 진주에서 생산됐다는 진주햄 외에도 백설햄, 롯데햄이 유명했다. 가성비를 내세운 알뜰소시지도 많이 보인다. 완두콩과 함께 야채를 넣은 야채햄도 등장했다.

분홍 소세지

탁탁—

팬 위에서 구워지는 소세지.

벌겋게 살 오른 단면에서

기름이 번진다.


입에 넣으면 달콤 짭짜름한 맛보다

마음이 먼저 눅진해진다.


잊히지 않는 맛.

그리고

돌아가고 싶은 기억.




오늘의 1인 밥상

소시지 때문에 더 건강하게 챙겼다. 차돌된장찌개 한 그릇에, 밭에서 뜯어온 쌈채소에, 밑반찬들. 누구보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손이 정갈하게 차린 한 끼. 든든하다. 그리고, 마음 한편이 따뜻하다. 어린 날의 내가, 바로 옆에 함께 앉아 있는 듯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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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도시락 속에서 가장 단정하고 다정했던 반찬. 계란말이를 꺼내보려 한다. 엄마의 마음이 정갈하게 돌돌 감겨 있던 그 반찬. 나는 아직도, 반듯하게 자른 계란말이를 보면 그 시절 도시락 뚜껑을 열던 순간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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