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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 엄마의 계란말이

직장인의 1인 밥상

by 규아

소시지나 햄이 반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전, 도시락의 중심은 단연 계란말이였다. 앞자리 반장의 도시락에는 늘 단정하게 말린 계란말이가 담겨 있었다. 노릇한 겉면과 부드러운 속살, 반듯하게 잘린 단면에서 그 아이의 집안 분위기가 느껴졌다. 계란말이는 반찬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었다.


어떤 재료든 품을 수 있는 계란말이에는 집집마다 다른 야채들이 들어가 있었다. 파, 당근, 버섯이나 햄 등 다양한 속재료 하나하나에 그 집의 풍경과 정서를 담겨 있었다. 특히 살림을 야무지게 하는 엄마들의 계란말이는 흐트러짐 없이 곱게 말려 있었다.


나는 늘 그런 계란말이를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거의 스크램블 에그에 가까웠고, 모양은 터지고 흐트러졌다. 아이들은 그걸 보며 웃었다. “우리 엄마는 살림 못해~” 그 킥킥거림에 나도 같이 웃어댔다.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지만 은근히 까탈스러운 계란말이다. 불 조절이 조금만 어긋나도 한쪽은 덜 익고, 다른 쪽은 타버린다. 타이밍을 놓치면 터지거나 뭉개지기 일쑤고, 소금 간을 맞추는 것도 은근히 어렵다.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반찬.


시간이 흘러, 그 계란말이는 또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쓰린 속을 달래주는 술안주가 되기도 하고, 타지에서 위로가 되어 주기도 하고, 혹은 혼밥을 하는 아침,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가족이 되어주기도 한다. 한 줄의 계란말이는 그 시절 엄마의 손길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데려온다.


계란말이는 아픈 기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형편이 어려워져 엄마가 한동안 집을 비웠던 시절, 도시락에서 계란말이도 사라졌다. 김치볶음만 잔뜩 있던 도시락. 많은 감정이 담겨있던 그때의 도시락은 유독 무거웠다.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한 계란말이. 그 단정한 반찬 한 줄에 마음이 일렁인다.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싸던 엄마의 뒷모습,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도시락을 까먹던 아이들, 그리도 지금의 우리 아이들까지. 계란말이는, 단순한 반찬이 아니다. 그건 사랑이고 기억이다. 나의 소울푸드. 엄마의 계란말이.


오늘은 그 계란말이가 먹고 싶었다. 제철 애호박을 듬뿍 넣어보았다. 노란빛 틈으로 연두가 스며있는 계란말이. 예쁘게 말리진 않았지만, 지금의 나를 위한 음식이다.


푸근한 기억 한 줄, 계란말이


선생님께 혼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날


도시락을 열어보니

엄마의 계란말이가

말없이 미소 짓고 있었다.


돌돌 말려

단아하게 자리 잡은

엄마의 사랑 한 줄


그것만으로

가슴이 푸근해졌다


오늘의 1인 밥상

계란말이 옆에 노릇하게 구운 목살을 두었다. 청국장을 끓이고, 메추리알과 멸치조림, 가지나물을 곁들였다. 입안에서 퍼지는 고소함 사이로 마음도 조용히 풀어진다.


계란 세 알로 만든 한 줄의 반찬. 그러나 오늘도, 나를 따뜻하게 끌어안는 데엔 이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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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호박잎이다. 쪄서 물기 짜낸 호박잎에 쌈장 한 숟갈 올려 돌돌 싸면, 그 한입이 바로 여름이었다. 할머니의 손맛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따뜻한 쌈. 여름과 함께였기에 입안 따사로왔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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