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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한 숟갈, 그리움 한 그릇

소소행(小笑幸), 직장인의 1인 밥상

by 규아

반찬이 없다고 투정 부릴 때, 엄마는 말없이 간장밥을 비벼주셨다. 따끈한 흰쌀밥에 간장 한 숟갈, 참기름 몇 방울, 깨소금 조금.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비비고, 김에 싸서 내 손에 쥐여주던 그 한 입. 반찬 하나 없이도 그 단출한 한입이 그렇게 맛있었다. 엄마 손에서 만들어진 그 밥은 투정도, 속상함도 다 녹여주었다.

간장밥에 버터를 비벼먹는 게 유행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는 ‘비행장’이라 불리던 미군기지가 있었다. 거기서 일하던 엄마 친구가 가끔 ‘빠다’를 들고 오면, 엄마는 동네 사람들을 불렀다. 밥 한 솥을 안치고, 간장에 빠다(버터)를 넣어 함께 호호 불며 나눠 먹던 날들. 고소한 냄새와 웃음소리,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위로 이야기꽃과 사람냄새가 퍼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그냥 버터간장밥이 아니라 함께 나눈 정겨운 밥상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도 엄마가 되었다.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침, 우리 엄마가 하던 대로 아이들에게 간장밥을 만들어주었다. 하나씩 돌돌 말아 밥그릇 안에 넣어주면 작은 손들이 하나씩 집어 먹었다. 볼이 가득해질 때까지 오물거리던 아이들, 그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우리 집 아침 풍경 속에 자주 등장하는 간장밥이었다.


더 먼 기억 속엔 외할머니가 있다. 밥 먹기 싫다고 입을 삐죽 내밀던 어린 나에게 외할머니는 간장에 밥을 비벼 김치 한 점 얹어 입에 넣어주셨다. 그 한 입이 몇 달 떨어져 살던 엄마 없는 설움을 달래주었다.


간장밥이 거창한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내겐 엄마의 손길, 외할머니의 정, 아이들과 나눈 평범한 아침, 그 모든 순간이 담긴 회고의 밥상이다. 지금도 밥맛이 없을 때, 마음이 헛헛할 때면, 나는 간장밥을 비빈다. 그 한 그릇에 그리움을 담아 먹는다.


한 숟갈의 기억

간장 한 숟갈,

참기름 몇 방울,

깨소금 한 줌.

엄마의 손이

밥 위를 슥슥 스치면

고소한 향기가 퍼진다.

야무지게 말린 김 속의

소박한 기억이

오늘 내 안의 그리움을 달랜다.



오늘의 1인 밥상

조미김에 먹는 간장밥 한 그릇. 구수하게 끓인 시래기 된장국과 각종 김치들. 그리고 계란프라이 하나. 단출해도, 입안 가득 따뜻한 기억이 퍼진다. 밥만 있어도 괜찮은, 그런 날의 밥상.


다음엔, 카레다. 커다란 냄비에 며칠을 먹을 만큼 푹 끓이던 그날의 카레. 노릇하게 볶은 양파, 큼직한 감자와 당근, 고기 대신 사랑이 담긴 노오란 소스. 카레 냄새가 골목 끝까지 퍼지면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저녁상을 푸근하게 덮어주던 기억을 꺼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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