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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밥상단골, 박대

소소행(小笑幸), 직장인의 1인 밥상

by 규아

군산에서는 흔하고도 흔한 생선, 박대. 하지만 외지 사람들은 "이게 무슨 생선이냐"며 고개를 갸웃한다. 박 씨가 바다에서 큰 생선을 건져 올렸다고 붙여졌다고 전해지는 이름. 납작한 몸에 깨알처럼 박힌 작은 눈,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생김새. 서해와 금강이 만나는 군산에서 ‘밥도둑’이라 하면 꽃게장과 함께 작은 눈이 매력적인 박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군산 사람들에게 박대는 기름에 튀기듯 구워 먹는 게 정석이다.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밥을 부르는 박대구이. 조림으로도 훌륭하고, 풍부한 젤라틴 덕에 묵으로 먹는 별미도 있다.


수산물이 넘치는 군산에서는 웬만한 집 밥상에 늘 박대가 있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박대의 가운데를 젓가락으로 가르면 하얀 속살이 부드럽게 드러난다. 가장자리 지느러미에는 꼬득꼬득한 잔가시와 쫀득쫀득한 젤라틴이 붙어있는데, 나는 그 부분을 유난히 좋아한다. 남들이 발라내는 그 자투리가 내겐 가장 맛있는 부위다.

어린 시절 외삼촌 집에 가면, 할머니와 외삼촌이 박대 순살을 골라 내 밥그릇에 얹어주곤 하셨다. 그럴 때면 외숙모가 “애 밥도 제대로 못 먹게 하지 마라” 하며 핀잔을 줬다. 따뜻하지만 많은 감정이 섞여있는 식탁의 공기, 그때의 온기가 아직도 입안에 남아 있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살던 시절에는 박대를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한 번씩 보내주는 택배 상자 안에서 고향의 맛과 향수를 달랬다. 그 순간만큼은 부엌 한가운데서도 고향의 바람이 불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와 살다 보니, 시장 골목 어디서든 못생긴 박대를 쉽게 만난다. 깨알 같은 눈, 납작하고 마른 몸매를 보면, ‘참 용감하게 태어났구나’ 하고 웃게 된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상 위, 고소하면서도 은근한 바다 냄새가 풍기던 박대. 담백하면서도 기름진 맛에서 언제나 집밥따스함을 느낀다. 엄마가 집에 오는 날이면 박대를 굽는다. 엄마 손으로 발라주는 박대는 유난히도 감칠맛이 난다. 그 맛을 함께 나누며, 우리는 엄마의 젊은 시절과 나의 어린 날을 공유한다.


오늘은 박대를 조림으로 해봤다. 늘 구워 먹기만 하던 박대지만, 웬일인지 엄마를 흉내 내보고 싶었다. 혀끝의 기억을 더듬어 양념을 만들고, 불 앞에서 조심스레 끓여낸 첫 박대조림. 생각보다 괜찮았다.


한 그릇에 스민 것들

납작하고 투박한 생선 하나
양념에 몸을 묻으며
냄비 밑바닥에서
오래도록 숨죽였다.


바다를 누렸던 박대는

그렇게 육지의 날 것을 품으며

서서히 스며든다.


더 엎드리고, 더 보듬을수록

우러나는 깊은 맛

냄비 한 그릇에

온갖 시름이 녹아든다.


오늘의 1인 밥상

상추에 젓갈 싸 먹는 맛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오늘은 박대조림에 어울리는 흰밥을 상추와 창난젓에 싸서 먹으려고 함께 내놓았다. 육개장, 장아찌, 그리고 부드러운 계란말이까지 곁들였다.

다음은 고등어조림을 먹어야겠다. 등 푸른 생선 중에서도 가장 서민적이면서도 기품 있는 고등어. 한 마리만 구워도 식탁이 가득 채워진다. 제2의 고향인 경기도에서 자주 먹었던 생선. 탱글탱글한 살 속에 바다를 품은 고등어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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