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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토막 위로, 고등어조림

소소행(小笑幸), 직장인의 1인 밥상

by 규아

군산에서 자란 내게 고등어는 그다지 특별한 생선이 아니었다. 서해와 금강이 만나는 곳, 내 고향의 시장 좌판에는 늘 박대와 조기, 갈치가 넉넉하게 깔려 있었으니까. 싱싱한 생선이 흔한 곳에서 굳이 염장한 고등어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


고등어가 내 밥상에 자리 잡은 것은 제2의 고향, 경기도에서였다. 바다가 없는 땅에서는 간고등어나 염장 생선이 더없이 든든한 반찬이었다. 그곳 사람들에게 고등어는 가장 익숙한 생선이었고, 나도 자연스레 그 맛에 물들어 갔다.


첫 직장 시절, 퇴근 후 자주 들르던 허름한 식당에는 늘 양은냄비가 연탄불 위에 올려져 있었다. 뚜껑을 덮은 채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고등어김치조림, 국물이 가장자리를 타고 넘칠 듯 흔들리다 이내 잠잠해지곤 했다. 뚜껑을 열면 붉게 우러난 국물 사이로 고등어가 드러나고, 비릿하면서도 얼큰한 그 냄새는, 소주 한잔을 부르게 했다.


뜨겁게 우러난 국물에 적신 고등어 한 점과 소주 한 모금은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다. 짭짤하고도 뜨끈한 맛은 고단한 하루를 잠시 잊게 했고, 그 맛은 상사의 무심한 토닥임, 동료의 묵묵한 웃음, 그리고 술잔을 부딪치며 스르르 녹아내리던 하루의 무게와도 닮아 있었다.


우리는 같은 냄비를 둘러싸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고단한 하루를 견디고 또 다음 날을 살아낼 힘을 나누었다. 고등어김치조림은 그렇게 직장인들의 애환을 풀어내던 위로이자 연대였다.


이제 다시 고향 군산으로 돌아와 신선한 생선들이 흔한 삶을 살고 있지만, 가끔은 그 고등어가 그리워진다. 냄비에 고등어와 김치, 무를 차곡차곡 눌러 담고 불을 올리면, 곧장 그 겨울밤의 따뜻한 식당으로 되돌아간다.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 사이로 오래 전의 얼굴들이 하나둘 피어오르고, 숟가락을 들던 손길과 술잔을 부딪치던 웃음소리가 귓가에 번진다.


그때의 냄비 위 고등어가 직장인의 위로였다면, 오늘의 1인 밥상의 고등어김치조림은 지나온 시간과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다. 그 다리를 건너며 나는 고요히, 한 토막의 위로를 받아 든다.

한 조각 위로


한 토막 고등어가
김치와 어깨를 맞대고

숨죽이며 익어간다.


국물이 자작해질수록
스무 살의 웃음, 서른 살의 눈물이

보글보글 피어오른다.


젊은 날의 그리움도
젓가락 끝에 매달려
오늘의 밥상 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오늘의 1인 밥상

고등어김치조림에 된장국, 깻잎쌈을 올렸다. 그리고 멸치견과조림. 엄마는 이걸 먹고 골다공증이 나았다며 떨어질 만하면 해다 주신다. 아마도 그 덕에 암 수술도 큰 후유증 없이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집은 오래전부터 믿어왔다. 일상에 오르는 밥상, 그것이 곧 보약이라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밥상에서, 잃었던 삶의 체온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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