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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위안, 닭똥집 튀김 한 접시

소박한 한잔의 행복, 프롤로그

by 규아

먹는 것에 항상 진심인 나는 지금까지의 <직장맘의 1인 밥상>에서 서술했듯이 홀로 식사를 할 때도 한 상 거하게 차려 먹는다. 혼자 먹어도, 소환된 옛 기억들로 밥상이 늘 북적였다. 엄마의 손맛, 어린 날의 기억, 추억의 한 장면들.


특히 몇 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겪으며, 나의 밥상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로컬푸드에서 갓 사 온 채소들이 머금은 햇살, 향긋한 기운, 흙내음이 밥상에 깃들었고, 영양제를 따로 챙기지 않는 대신 밥상에서 건강을 얻었다.


하지만 단 하나 지키지 못하는 게 있다. 바로, 술이다. 술은 늘 하루의 소소한 위로였고, 그 유혹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럴듯한 명언까지 지어냈다. ‘육체적 건강은 밥상에 있고, 정신적 치유는 술자리에 있다.’

이제 나는, 세파에 억눌린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주던 술과 안주 이야기를 며칠간 풀어놓으려 한다. 왁자지껄한 모임이 아닌, 혼자 혹은 둘이서 소박하게 차려낸 술상. 그 속에 담긴 웃음과 애환, 그리고 위로의 기억들을 차근차근 되새기고 싶다.


맥주보다 시원한 웃음, 막걸리보다 진한 애환, 소주보다 깊은 위로를 주는 퇴근 후 한잔의 술자리. 생각만 해도 빨리 퇴근하고 가고 싶어지는 그 곳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려 한다.



[오늘의 소소한 한잔] 닭똥집 튀김, 네가 왜 이리 좋을까


갑상선암 수술 전날, 고속버스터미널 순대국밥집에서 만난 평생 잊지 못할 포스터를 보았다. “생맥주 무료.” 잔에 맺힌 물방울, 뽀글뽀글 올라오는 기포와 하얀 거품, 시원하게 쏟아지는 황금빛 맥주. 하아… 아무리 술을 좋아해도 수술 전날은 참아야 했다. 하지만 그 한 잔은 수술과 회복 기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몇 달 후, 의사가 말했다. “이제 아무거나 드셔도 됩니다.” 나는 그 말을 곧장 “술도 괜찮다”로 해석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얼음잔에 시원하게 따라 내린 생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날의 안주는 닭똥집 튀김. 겉은 치킨처럼 바삭하고, 속은 마른안주처럼 꼬들꼬들하다. 치킨과 마른안주를 동시에 즐기는 기분이랄까. 한 입 먹고 맥주 한 모금이면, 세상 행복이 거기 다 있었다.


특히 내가 사는 군산의 ‘별미똥집’은 최애다. 노포에서 튀김 위에 대파 듬뿍 양념장을 얹어주는데, 단짠단짠의 절묘한 조합은 느끼함도, 비릿함도 싹 잡아준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마성의 안주.


닭똥집 튀김은 내게 단순한 술안주가 아니다. 수술 후 첫 술잔을 함께한 인생 안주, 닭똥집 튀김은 치킨 한 마리가 부담스러운 혼술에도 부담 없는 단짝이다. 질기디 질긴 안주를 어금니 가득 씹어내다 보면 왠지 인생의 무언가를 깨닫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결국 인생도 닭똥집 같지 않은가. 바삭한 순간과 질긴 순간이 뒤섞여도, 끝까지 씹다 보면 전혀 다른 맛이 펼쳐지는 인생. 좁은 상 위에 닭똥집 튀김 한 접시와 생맥주 한 잔. 크게 떠들지 않아도, 소소한 대화로 서로의 하루를 풀어낸다. 오늘도 나는 그렇게 소박한 술상 위에서, 지인들과 함께 짭조름한 인생을 웃음과 회포로 곱게 버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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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똥집 미학: 질긴 하루를 씹다

바삭, 꼬들

씹을수록 풀려나는
질긴 하루의 매듭


단짠의 맛결 위로
생맥주 한 모금 얹히면
오늘은 이만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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