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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밥상에서 피어난 여름

직장인의 1인 밥상

by 규아

호박잎이 밥상에 올라오면,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였다. 단독주택에 살던 시절, 엄마는 담을 타고 들어온 옆집의 호박줄기에서 연한 호박잎을 따곤 하셨다. 엄마가 부엌에 서서 땀을 뻘뻘 흘리며 차려낸 밥상. 그 땀방울 속에서 완성된 한 끼.


쪄서 물기를 꾹 짜낸 호박잎은 거칠면서도 부드러웠다. 엄마는 된장을 풀어 고추와 마늘, 우렁을 넣은 쌈장을 내주셨다. 뜨거운 쌈장과 뜨끈한 밥을 호박잎에 올려 돌돌 말아 한입 넣으면, 따사한 여름이 입안 가득 퍼졌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한 대가 전부였던 그 시절, 우린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먹었다. 한낮의 땡볕에도, 저녁의 간간한 바람에도, 엄마의 밥상은 늘 따스했고, 호박잎쌈은 언제나 맛있었다


그땐 옆집 사람들, 동네 이웃들도 함께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박잎에 쌈장을 싹싹 비벼 넣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없었다. 이모, 삼촌이라 부르던 이웃들과 둘러앉아 땀을 뚝뚝 흘리며 후다닥 밥을 먹고 배를 두드리던 풍경. 갓 뜯은 채소에 더해진 엄마의 손맛은 그 어떤 양념보다 깊고 진했다.


지금은 혼자 먹는 밥상이지만, 그 한 줄기 푸른 잎에서 엄마의 손맛과 사람들과 함께 나눈 맛의 기억을 더듬는다.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기와 질감은 다시금 대청마루에 앉아있던 내 어린 날로 날 데려간다.


이젠 시장이 버거운 1인 가구이기에,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쌩얼같은 맛’을 그리며 로컬푸드 직매장을 찾는다. 밭에서 갓 딴 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곳 채소엔 아직 햇살의 온기가 남아 있다. 운이 좋으면, 아직 숨 쉬고 있는 듯한 상추나 고추, 호박잎을 만날 수 있다.


엄마의 호박잎을 흉내 내보았다. 그때의 맛이 비할 바 못 되지만, 어린 시절 사람들과 나눈 기억을 꺼내어 나를 위한 여름 밥상을 차려본다.


여름은, 호박잎에 맺혀있다.

땀방울이 국물처럼 떨어지던 부엌,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호박잎을 찌고, 쌈장을 끓였다.


연녹색 잎사귀 하나에
여름 한 철을 돌돌 말아
우리 입에 넣어주던 사람.


텁텁하고 투박했던 그 맛은

오래도록 식지 않아,

나는 오늘도 그 여름을 한입 베어 문다


오늘의 1인 밥상

호박잎쌈을 중심으로, 김치 고등어 무조림과 조기구이, 각종 장아찌를 곁들였다. 어렸을 때 먹던 반찬과 달큰하고 고소한 쌈 하나에 여름을 돌돌 말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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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간장밥이다. 입맛 없던 날, 시간 없던 날, 마음까지 번잡하던 날. 갓 지은 밥 위에 참기름 한 방울, 간장 한 숟갈, 통깨 솔솔. 쓱쓱 비벼 김 한 장에 싸 먹으면, 그게 꿀맛이었다. 요란하지 않아도, 배고픔도, 기분도 풀리던 밥 한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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