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직장인의 집밥먹기
밥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끼니때마다 같은 밥상이 올라와도, 그 안엔 매번 다른 감정이 녹아 있다. 서러움도, 그리움, 위안도 한 숟가락 밥에서 시작된다. 밥은, 밥 그 이상이다.
무엇보다 요리는 재료다. 재료만 좋으면, 뭐든지 맛있다는 게 지론이다. 재료가 시원찮으면 양념이 많아지고, 간도 세진다. 그래서 웬만하면 로컬푸드에 간다.
오늘은 콩나물무침이 먹고 싶었다. 파가 유독 싱싱했기에... 그 초록빛을 살릴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바로 떠오른 게 콩나물무침이었다. 왜였는지는 모르지만, 기분이 그랬다.
어린 시절, 참기름 향을 솔솔 풍기며 파릇한 파와 통깨를 고명으로 얹은 콩나물무침은 매번 단아하게 밥상 한편에 놓여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밥 위에 그 무침 한 젓가락이면 충분했다.
어른들은 “콩나물 먹으면 키가 쑥쑥 큰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정말 많이도 먹었다.... 하지만 내 키는 초등학교 6학년에서 멈췄다. 몸무게는 말해줄 수 있어도 절대 키는 말하지 않는 나. 콩나물에, 속았다!
콩나물은 우리나라에서만 먹는 음식 재료로 알려져 있다. 최초 재배는 삼국시대 말이나 고려 초로 추정된다. 고려 태조가 건국하기 전에, 군사들의 식량이 부족하자 콩을 냇물에 담가 콩나물로 불려 먹게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런 배경으로 콩나물은 과거 구황작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콩나물시루에 물 붓듯이’라는 말이 있다. 물을 주면 금세 아래로 빠지지만, 콩나물은 그 물을 먹고 자란다. 보이지 않아도, 자라는 건 자란다. 그 말이 요즘엔 괜스레 더 깊게 와닿는다.
콩나물은 콩의 영양소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콩에는 없는 비타민C를 품고 있다.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해 숙취 해소에 좋고, 감기 예방, 노화 방지, 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콩나물은 뿌리-몸통-머리 부위마다 영양소가 다르지만, 어차피 통째로 먹는 것이니 그 차이를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참고로, 콩에 싹을 틔운 것은 콩나물, 녹두에 싹을 틔운 것은 숙주다. 같은 듯 다른 두 식재료. 이름도, 영양도, 쓰임도 닮은 듯 다르다.
오늘은 콩나물이다.
1. 엄마가 특별 공수한 통참깨와, 다진 파, 약간의 마늘을 준비한다.
2. 삶아 물기를 뺀 콩나물에 굵은소금과 꽃소금을 살살 뿌린다.
3. 참기름 휘휘 둘러 무친다. [*참기름과 들기름은 무조건 신선해야 한다]
... 사실 고춧가루 넣는 걸 또 까먹었다. 그래도 오늘도 하얀 콩나물 무침. 담백해서 더 좋다.
콩나물이 좋다
흰밥 위에 한 젓가락,
소금 간만으로도 충분했던 맛.
힘든 날엔
따뜻한 콩나물이 나를 다독였다.
늘 곁에 있지만
주인공이 되지 않는 반찬,
나는 그런 콩나물이 좋다.
나의 오늘 1인 밥상
큰 재료 하나 없이도, 마음이 푸근하다. 미역국, 미역국엔 늘 따라붙는 신김치, 짭짤한 생멸치 한 접시, 그리고 예전에 만든 김치부침개와 얻어온 동치미. 재료를 고르고, 손질하고, 먹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진다.
50대에 스스로를 먹이는 것에 재미가 들린 직딩. 사 먹는 음식보다 직접 장을 보고, 요리한 음식에 더 애착이 간다. 무엇이 들어갔는지 알고 먹는 것, 그게 내 삶에 애착을 갖는 방식이 되었다.
든든한 행복이 쌓인 아침이다. 다음에는, 보기만 해도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반찬. 소시지를 꺼내보려 한다. 한때 햄과 스팸에 밀렸지만, 어느새 다시 우리 식탁에 돌아온 소시지. 건강과는 거리가 멀지만, 혀끝에 남은 기억과 밥상을 맴도는 그리움을 맛보고 싶다
#콩나물 #혼밥 #소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