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렌딩의 도시, 군산에 취하다
지금은 도시지만, 군산은 본래 바다였다. 물결 위에 흩뿌려진 섬들이 하나둘씩 육지로 다가와 붙으며 이 도시는 형체를 갖추었다. 사람처럼, 기억처럼, 바람처럼 이 섬들은 서로를 향해 다가왔고, 마침내 하나의 도시로 블렌딩 되었다. 지금 우리는 도로를 달려 그 옛 섬들의 흔적을 더듬는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그 연결의 시작은 이 섬들에서 비롯되었다.
가장 먼저 육지와 연결된 섬은 비응도였다. 섬의 형상이 매가 나는 모습과 닮아 그렇게 불렸다. 일제강점기에는 군산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으로 붐볐고, 채만식은 1938년 여행기에서 비응도를 “해수욕장으로서 그리 어설프진 않은 곳”이라 평했다. 지금은 등대와 방파제를 품은 마파지길이 비응도의 전경을 보여주는 명소가 되었다. 섬과 도시, 바다와 육지가 첫 번째로 연결된 시점이 바로 이곳이었다.
비응도의 육지화 이후, 야미도는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 되었다. 밤나무가 많아 ‘밤섬’으로 불리다가 한자가 잘못 표기된 채로 ‘야미도’가 되었다. 지금은 새만금 방조제로 육지와 맞닿게 되었다. 지역의 시간과 정취를 품고 있으며, 바다낚시와 일몰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이렇게 가까운 섬들부터 시작해, 군산은 섬과 육지를 잇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사람들은 이제 배가 아닌 자동차로 이 길을 달린다. 하지만 이 도로에는 여전히 파도와 섬의 향이 살아 있다.
야미도에 이어진 신시도 역시 새만금 방조제를 따라 육지와 연결된다. 고군산군도 중 가장 큰 섬이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머물며 글을 읽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월영봉과 대각산에서 선유 8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최치원의 유적과 함께 학문과 풍경이 살아 있다. 군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지성의 단면이 새겨있는 곳이다.
신시도에서 고군산대교를 지나서 마주하는 섬이 무녀도다. 섬의 형상이 무당이 춤추는 모습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장구 모양의 섬과 술잔처럼 생긴 바위가 어우러져 굿판을 연상케 한다. 고려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고, 넓은 염전과 간척지가 섬사람들의 부지런함을 보여준다. 섬의 본래 이름은 ‘서들이’였다. 부지런히 움직이기만 하면 잘 잘 수 있는 섬이라는 뜻. 이곳의 드넓은 간척지를 보면 섬사람들의 부지런함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섬들은 단지 지리적 위치나 교통으로 연결된 것만은 아니다. 그 속엔 전설과 기억, 사람들의 삶이 얽혀 있다. 육지화된 사실보다, 그 안에 깃든 이야기가 군산을 진짜 ‘도시’로 만들고 있었다.
선유대교를 따라가면 선유도가 나온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신선이 놀다 간 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 고려시대에는 송나라와의 무역 기항지였고, 조선시대에는 수군 본부가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열흘간 머물며 전열을 정비한 곳이기도 하다. 군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아우른 이름이 ‘선유 8경’이라고 불리듯 고군산군도의 중심지다. 섬과 바다, 모래사장이 어우러진 풍광을 뽐내고 있다. 군산 섬의 아름다움이 가장 찬란하게 드러나는 섬이다.
스카이워크가 조성된 장자대교를 걷다 보면 장자도가 나온다. 몽돌해안과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해안 산책로는 마치 수석 전시관을 걷는 듯한 기분이 준다. 신시도, 방축도, 선유도에 이어 제일 작은 유인도이지만, 한때 가장 번성한 섬으로 풍요로운 어획과 천연 대피항으로 이름을 날렸다.
조금 더 걸으면 나오는 대장교를 건너면 대장도다. 한 도사가 "이 섬에 언젠가 큰 다리가 놓일 것"이라 말한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장자도와 이어지는 다리가 실제로 생기면서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지금은 작은 어촌마을로,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고, 걷기 좋은 길들이 이어진다.
군산은 더 이상 바다와 육지로만 나뉘지 않는다. 섬과 뭍의 경계가 희미해졌고, 사람들은 과거의 물길 위를 달린다. 육지가 된 섬들, 그 시작을 기억하는 일은 이 도시의 결을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이다.
다음 화에서는, 아직 길이 닿지 않는 섬들을 만나보려 한다. 도로가 멈춘 자리 너머, 향기처럼 남아있는 고요한 잔향들. 닿지 않았기에 더 짙게 스며드는 그 섬들은 또 어떤 풍경으로 도시를 끌어들일까. 여전히 이어지는 블렌딩의 길 위에서, 우리는 군산이라는 이름에 다시 한번, 깊이 취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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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제공 : 군산시, 새만금개발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