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견과 함께 살기
산책길에서 한 아주머니가 종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시츄를 키웠는데, 지금은 하늘에 있어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언제쯤… 잊혀졌어요?” 그분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죽은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시츄만 보면 눈물이 나요.”
병원에서 만난 또 다른 보호자도 같은 말을 했다. “몇 년이 지나도 강아지가 앉던 자리를 보면 가슴이 아파요.” 다가오는 종대의 죽음을 슬퍼하자 누군가 ‘새로운 강아지를 키우면 잊혀진다’고 위로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알 수 있었다. 반려동물은 결코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어느 날 저녁, 단톡방에 누군가 메시지를 올렸다. “강아지 사고 싶은데요.” 순간, 분노와 함께 두려움이 올라왔다. 아무런 준비없이 들인 생명이 결국 상처받을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역시 한때는 그와 다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도 반려동물을 ‘사는 것’이라 여겼을지 모른다. 아이들의 조름에 못 이겨 종대를 데려왔을 때, 그저 밥만 잘 먹이면 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최소한의 예방접종, 기본적인 의료조치, 유의사항조차 몰랐고 그 무지의 대가를 지금도 매일 안고 산다.
어렸을 때 해야할 중성화를 하지 않은 종대는 수술 시기를 놓쳤다. 노견이자 중증 당뇨를 앓고 있기에 큰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수술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악성 유선종양이나 자궁축농증이 오지나 않을지 하루하루가 노심초사다.
이 경험은 분명한 깨우침을 주었다. 입양 과정에서 이런 최소한의 정보는 반드시 고지되어야 한다. 반려동물과 사는 데 알아야 할 것들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입양과 동시에 감당해야 할 책임을 숙지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반려동물과 사람 모두를 지키는 울타리가 될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면 키울수록 알게 된다. 그들은 감정을 느끼고 교감을 나누며, 몸짓 하나로도 마음을 전하는 존재임을. 그들도 우리 곁에서 아프고 늙고 죽어가는, 존엄한 생명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유로 반려동물을 학대하고 함부로 대한다. AI 인권까지 논의되는 시대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에 대한 자세 역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명을 대하는 태도는 곧 사회의 품격이다. 그리고 끝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지 반려동물이 아니라 우리 안의 인간다움이다. 그것이 종대가 내 곁에 남겨둔 마지막 숨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