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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여행자 May 24. 2018

아무나 모르는, 그 한남동

<週刊 태이리> 1호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은 내 기억이 처음 시작되는 곳입니다. 유치원부터 초중고의 색 바랜 이야기들이 거기 다 있어요. 한남동이 요새야 제법 으스대지만, 1980년대의 그곳은, 어른이 되고 싶어 조바심이 난 소년 같았습니다.


#1. 너무나 다른 것들이 모여 사는 동네

한남동 스카이라인은 완만한 포물선입니다. 왼쪽 위에는 한광교회가, 오른쪽 아래에는 이슬람성당이 양 꼭짓점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비스듬히 서 있습니다. 후암동으로 조금 더 눈을 돌리면, 서울타워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남산 뷰가 완성됩니다. 한남동 언덕에는 낡은 맨션과 다세대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어둠이 잦아들면 모두 사라지고 한광교회의 빨간 십자가와 이슬람성당의 하얀색 초승달만이 두둥실 떠오릅니다. 두 종교가 랜드마크의 지위를 놓고 다투는 것 같은, 묘한 기운마저 들기도 합니다.     

▲ 한광교회와 이슬람성당은 한남동의 상징이다

한남동에는 꽤 여러 가지가 ‘더’ 섞여 있습니다. 나이 듦과 젊음, 동양과 서양, 그리고 ‘풍요와 빈곤’마저 종이 한 장 위에 꾹꾹 우겨져 있습니다. 셀럽들이 모여 사는 UN빌리지에는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우아함과 여유가 넘치고, 제일기획과 하얏트호텔에서는 국적을 넘나드는 화려함이 피어오릅니다. 삼성 가(家)와 온갖 재벌들의 대저택은 남산 밑동에, 외교부 공관과 대사관은 한남초 주변에 몰려 있습니다. 단국대는 도심 속 초호화 타운하우스라는 ‘한남더힐’로 변했고, 외국인아파트는 ‘나인원’으로 이름을 바꾸는 중입니다.     

▲ 한남동 오르막길은 마추픽추가 연상될 정도로 험하다

가난과 애환은 하늘 가까운 데 따로 모여 있습니다. 순천향병원과 한남파출소 건너편에는 구불구불한 오르막이 하나씩 있는데, 두 길은 모두 ‘도깨비시장’이라고 불리는 한남동의 지붕으로 이어집니다. 수백 개의 계단이 나선형을 이루며 촘촘히 쌓여 있어서 ‘서울의 마추픽추’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사실은 지금 막 제가 지어냈습니다.) 그곳에 가면 ‘시간이 거꾸로 흘렀나?’하는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될 겁니다. 부촌(富村) 한 가운데인 이곳 한남동에, 1930년대의 서울 뒷골목이 망명 정부의 꼬깃한 지폐처럼 숨어 있거든요.     


#2. 한남동 빨간 기와집과 코발트블루

‘정다운 우리집’은 한남동 능선 어디쯤에 있었습니다. 방이 다섯 개, 장독대가 네다섯, 빨래를 겨우 걸만한 좁은 마당과 장미를 심은 꽃밭이 하나, 다락과 부엌과 출구가 두 개씩인, 기묘한 구조의 빨간 기와집이었어요. 여기에서 ‘한 지붕 세 가족’이 집주인과 세입자로 엉켜서 꾸역꾸역 살았습니다. 그 집을 온전히 쓸 수 있게 된 건,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기억합니다.    


빨간 기와집은 문을 열 때마다 노인네의 밭은기침 같은 쇳소리가 끼이익-끽 났고, 황갈색마루는 아무리 닦아도 나무 곰팡내가 났습니다. 세 가족이 사는데 화장실은 하나라, 아침저녁으로 붐볐습니다. 맞벌이 부모님은 늘 바쁘셨는데, 웃음이 별로 없었고 서로에게 냉랭했습니다. 형과 누나까지 다섯 식구가 살기에 돈도 적었지만, 대화가 훨씬 더 부족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픕니다.    


삶은 원래 다 그런 줄 알았으니, 별로 상처는 아니었습니다. 아랫동네 생일파티에 초대받기 전까진 정말 그랬습니다. 그 집은 기와가 코발트블루 색이었고, 문은 얼굴만 보여주면 저절로 열렸습니다. 스티븐잡스 연구실로도 손색이 없는 쾌적한 차고에서 안방만한 차 두 대를 한꺼번에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급기야는 미국시트콤 <코스비 가족 만세>에서나 보던 요리사가 거기 정말로 있었습니다. 아홉 살 무렵 ‘태생적 차별’이 뭔지 어렴풋 알게 됐습니다. 고백하자면, 그때 제 아비를 한참 원망했습니다. 죄송해요.      

▲ 한남동 대저택은 방마다 주소가 다르다고 할 정도로 크다


#3. 제목만 써 본 소설 <한남동 원주민>

그 빨간 기와집에 살면서, 낮고 어두운 다락방을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겨울에도 습하고 우중충한 냄새가 났지만, 그래서 오히려 충분히 아늑했거든요. 거기서 우연히 이상(李箱)의 시 <오감도>와 소설 <권태>, <날개>를 만났습니다. 우울과 찌질, 무기력과 냉소, 비겁과 무기력이 페이지마다 가득했어요.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쓰레기 같은 삶을, 이다지도 매력적인 이야기로 바꿔낸 건지.  대학교 1학년까지 이상(李箱)에게 이상(異常)하리만큼 매료됐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저에게도 아픔이 있고, 그중에서도 꼭 말하고 싶어 목이 간질거리는 ‘이야기’가 몇 개 있었거든요.  

▲ 그에게는 요절한 천재만이 갖는, 치명적 매력이 있다

그러면 저는 이제부터 쓰면 좋을까요. 제가 찾은 건 ‘한남동’입니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시작되니까요. 다들 거기를 잘 뒤져보시면 뭔가 나만의 이야기가 하나씩 숨어 있을 거라고, 거의 확신합니다.


 강북 최남단인 ‘한남동의 생로병사’는 수록 흥미롭습니다. 한남동으로 상징되는, 산업화 시대의 도시개발과 그 중심에서 밀려난 이웃의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볼 생각입니다. 내친 김에 <한남동 원주민>이라고 제목까지 지어 놨습니다. <週間 태이리>에서 슬쩍 연재해보려는데, 재밌을까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댓글 주세요. 한남동에 대한 제보 주셔도 좋습니다. 카카오톡 환영.     


▮ 덧붙이는 말 ▮


1. 공동연재라는 건 처음 해봅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되는 건지. 이 글은 <스피치라이터의 글쓰기>라는 개인 매거진에 발행한 것을 윤색한 것입니다.


2. <週刊 태이리>는 제가 매주 수요일 발행하는 매거진의 이름입니다.

   https://brunch.co.kr/@30story 


3. 제 글은 '한남동에 대한 이야기'와 '스피치라이터의 글쓰기 칼럼'으로 구성됩니다. 저는 한남동에서 나고 자란 스피치라이터(연설문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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