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Piano Concerto No.5 in E flat major op.73 "Emperor"
-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Carlo Maria Giulini.
Wiener Symphoniker
- 1979.2.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
Episode.1
한여름의 무더위는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합니다. 펄펄 끓는 태양 아래에서 기력은 쉽게 빠져나가고, 땀과 함께 의지도 사라지게 하는 듯합니다. 이때 우리는 조용히 식탁 앞에 앉아 삼계탕 한 그릇을 마주합니다. 푹 고아진 닭 속에 인삼, 찹쌀, 대추, 마늘이 가득 들어찬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회복의 선언이고 , 여름을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마치 이와 같은 의지를 품은 음악이 있습니다. 바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입니다. 이 곡의 서두는 한겨울의 침묵을 깨는 천둥과 같고, 피아노의 서사는 인간의 의지를 담은 불꽃같습니다. 삼계탕이 여름철 우리 몸의 정수리를 뜨겁게 관통하며 에너지를 되살리듯, 이 협주곡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웅대한 생명력을 음악으로 뿜어냅니다.
Episode.2
1악장 시작부터 화려하고 웅장한 피아노 솔로가 관현악 없이 등장하며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당당한 주제 교환은 '황제'라는 별명에 걸맞은 위엄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고요하고 내면적인 서정성이 돋보이는 2악장이 펼쳐집니다. 악장 내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속삭이듯 부드럽게 대화를 주고받는 듯합니다. 휴지 없이 시작되는 3악장은 생기 넘치는 론도형식의 피날레입니다. 경쾌한 리듬과 자유로운 전개가 인상적입니다. 1악장의 장엄함과는 대조적으로 밝고 활기차며, 연주자의 기교가 빛이 납니다.
Episode.3
아르투로 베네디티 미켈란젤리는 20세기 가장 신비로운 이미지의 전설적 피아니스트입니다. 자동차 정비에 일가견이 있었으며 항공기 조종 자격증까지 있었던 이 팔방미인은 자신의 피아노를 직접 조율하고 수리할 정도로 섬세한 귀와 손재주를 지녔습니다.
이 연주에서 미켈란젤리의 피아노는 한 모금의 국물 같습니다. 첫 음에서부터 그는 절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페달, 단 하나의 템포 변화에도 철저한 논리가 깃들여 있는 듯합니다. 그의 연주는 '황제'의 웅장함 보다는 은둔한 수도자의 경건함에 더 가깝습니다. 줄리니의 지휘는 또 다른 층위를 더합니다. 그는 과장된 감정이나 드라마를 피하고, 베토벤의 구조미와 고전적인 품격을 지켜냅니다.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부드럽고도 깊이 있는 음색은 그릇에 담긴 삼계탕의 국물처럼 중심을 잘 잡아줍니다.
Episode.4
삼계탕은 보양식이지만 그 본질은 회복입니다. 격렬한 외침이 아니라 조용한 속삭임 속에서 이 음식은 몸을 덥히고 마음을 안정시킵니다. 마찬가지로, 미켈란젤리와 줄리니의 '황제'도 억누를 정열, 절제된 힘을 통해 오히려 더 강한 감동을 줍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해석은 고온다습한 여름 속에서 한 사람의 내면이 스스로를 지탱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이 곡을 썼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겁니다. 그는 세상의 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했지만, 내면의 울림은 더욱 선명해졌던 것입니다. 그것은 미켈란젤리의 건반에서, 줄리니와 빈 심포니의 반주에서, 그리고 여름날의 삼계탕 한 그릇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세상을 다시 견딜 수 있는 힘이 타오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