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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경 Mar 10. 2021

시간의 속도

사물이 있던 자리⑩ 괘종시계


온종일 우리 집엔 나와 괘종시계뿐이었다. 똑딱똑딱똑딱…. 외면하려 해도, 귀를 막아 봐도 시계 소리는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마루에 걸린 괘종시계였다. 멀끔한 시계 얼굴에 태엽 구멍 두 개가 콧구멍처럼 뚫려있고 둥근 추가 단조로운 곡선을 그리며 흔들흔들 시간을 끌고 갔다.      


난 심심할 때면 마루에 벌렁 드러누워 좌우로 움직이는 시계추를 따라 눈동자를 굴리곤 했다. 그러다 보면 절로 눈이 감겼다. 시계는 어김없이 1시간마다 댕댕 종을 쳤지만 시계 소리를 듣고 잠이 깨는 법은 없었다. 시계 소리는 공기처럼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시계 소리가 느려도 너무 느렸다. 며칠 전 할머니가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 혼잣말 하던 게 생각났다.

“저게 밥 달라고 똑이노, 딱이노, 한다. 똑딱똑딱 똑띠 못 하고.”

태엽을 감아 줄 때가 됐다는 소리였다.      


일 년에 한 번 날짜를 정해놓고 할머니는 시계 양쪽 구멍에 차례로 열쇠를 넣고 더 이상 감기지 않을 때까지 단단히 태엽을 감았다. 너무 조였다 싶으면 시곗바늘을 돌려 태엽을 풀었다. 그리곤 시계추 아래 나사로 추의 속도를 조정했다. 시간이 느린지, 빠른지 판단하는 건 순전히 할머니의 감이었다. 시계추가 제대로 가는 걸 확인한 다음 깨끗한 헝겊으로 유리문을 반짝반짝하게 닦아놓았다. 일은 할머니만이 할 수 있었다. 아빠도 엄마도 괘종시계엔 손대지 않았다.   


하필 오늘이 그날이라니. 일 년에 한 번 시계태엽을 감아주는 날, 할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허둥지둥 병원에 따라갔다. 언니 때문이었다.      


언니는 신장이 약했다. 날 때부터 그랬던 건지, 엄마 말대로 양약을 잘 못 먹어 신장이 상한 건지는 모르겠다. 전날 밤부터 고열이 났다. 어른들은 밤새 병원 문 열리기만 초조하게 기다렸다. 날이 밝자마자 엄마는 언니를 이불에 싸안고 병원으로 뛰었다. 얼마나 급했댓돌 위에 놓인 슬리퍼를 짝짝이로 신고 뛰쳐나갔다.      


아빠도 엄마를 놓칠세라 쌩하니 대문을 빠져나갔다. 러닝셔츠 위에 쥐색 점퍼만 겨우 걸친 채였다. 윗도리 같은 건 입을 생각도 못했다.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채비를 마친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동생을 포대기로 들처 업고 미리 마당에 나가 있었다. 세 살배기 걸음을 재촉하느니  허리가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업고 뛰는 쪽을 택한 거였다. 녀석은 포대기를 뗀 지 오래지만 시침 떼고 할머니 등짝에 납작 엎드렸다.

         

나는 바짝 긴장한 채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어른들은 혼비백산  후다닥후다닥 뛰어다녔는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또렷이 보였다. 아픈 언니를 감싸려 활짝 펼친 이불에서 하얀 미세먼지가 후루루 날리던 것까지, 꽁꽁 싸맨 이불속 언니의 축 늘어진 눈썹까지. 누가 시곗바늘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처럼 시간은 느리게 움직였고 나는 그날 아침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식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집이 텅 비었다. 아무도 다섯 살짜리 계집애를 신경 쓰지 않았다. 동생처럼 업고 가지도, 기다리란 말도 하지 않았다.  병약한 언니와 남동생 사이 노란 치즈 같은 존재가 나였다. 샌드위치 속 조화롭게 뭉개지는 맛. 괘종시계가 댕댕 울렸다.

배가 고팠다. 점심때가 다 돼서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을 어른은 없었다. 어른들은 사라졌다. 나뿐이었다. '여보세요'도 준비하지 않고 수화기를 덜컥 들었다.


"경이니?"


엄마였다. 언니는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배를 칼로 가르고 아픈 데를 고친다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그 순간에도 시계는 느리게, 느리게 가고 있었다. 똑… 딱… 똑… 딱… 시계추를 타고 느릿느릿 유리문을 열고 나와 내 왼쪽 귀를 지나 심장과 창자를 가르고 발바닥으로 빠져나갔다. 이렇게 느리게 가다가는 멈출지도 몰랐다.      


시계가 제대로 가야 언니는 수술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어른들도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시계 소리가 느릿느릿 목을 조여 오는 것만 같았다. 할머니도 없는데 시계는 누가 고치나.      


나는 괘종시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괘종시계는 내 키 한참 위에 있었다. 발끝으로 서서 아무리 버둥거려 봐야 소용없었다. 아예 귀를 막고 안방으로 들어가 벌렁 누워버렸다. 시계 소리는 문틈으로 들어와 기어이 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아까보다 더 느려진 것 같았다. 언니의 수술은 언제 끝나나. 나는 언제까지 혼자 남게 되는 걸까.      

  

생각할수록 막막하고 배도 고팠다. 생각을 멈추려 방바닥에 누워 팽이처럼 뱅뱅 돌았다. 분침과 시침처럼 두 개의 다리를 활짝 벌려 시간을 내달렸다. 더 빨리, 더 더 빨리. 더 더 더 빨리….

악! 

정강이를 어딘가에 세게 부딪쳤다. 의자 다리였다. 화장대 앞에 놓인 등받이 없는 나무의자. 그래, 의자가 있었다. 


의자를 끌고 마루로 나가 시계 아래 놓았다. 벽을 손으로 짚으며 그 위에 올라섰다. 약간 비틀거렸지만 문제없이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시계 유리문을 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태엽 열쇠도 추 바로 아래 있었다. 나는 태엽 구멍에 열쇠를 넣고 드르륵드르륵 돌렸다. 할머니가 하던 걸 봤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마루에 드러누워 시계 소리를 들었다. 시계는 잘 갔다. 빨라지긴 했는데 너무 빠른 것 같았다. 할머니는 시간이 제대로 맞지 않을 때면 시계 추 아래 있는 나사를 이용해 진자의 길이를 늘였다 줄였다 했다. 진자의 원리까진 알 리 없었지만 시간을 고치는 시늉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다시 유리문을 열었다. 좌우로 움직이는 추를 잡아서 아래쪽 나사를 비틀었다. 추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추를 올리자 시계 소리가 빨라졌다. 너무 빠른가? 조금 빠른가? 추를 내렸다. 이번엔 아주 약간 느린 것 같았다.


아주 미세한 차이를 찾아 점점 더 시계 소리에 골몰했다. 언니는 수술실에 누워있었고 나는 어떻게든 시간을 제대로 돌리고 싶었다. 시계는 절대 적당한 빠르기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시간의 적당한 속도를 나는 몰랐다. 손바닥에 땀이 차고 머리도 띵했다. 허기져 어지러웠다. 천장이 핑그르르 돌더니 뒤통수 쪽으로 휙 넘어갔다.  


눈을 떴을 땐 방 안이었다.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왜 거기서 자고 있냐 물었지만 나도 영문을 몰랐다. 그 시간은 전혀 기억에 없었다. 시간이 폭발해 버린 것만 같았다.

"할머니, 언니는…?

할머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시간이 폭발한 뒤엔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그날 병원에서 돌아온 사람은 할머니뿐이었다.      


언니는 꽤 오래 병원 신세를 졌다. 엄마와 아빠도 교대로 병상에 붙들려 있어야 했고 할머니는 병원과 집을 분주히 오가며 도시락을 날랐다. 그동안 괘종시계는 제가 가고 싶은 속도로 갔다. 난 끝내 시간의 적당한 속도를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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